[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편집자 주
Q.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A. 사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입니다. 그저 매번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듯이 늘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움이 제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책을 사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독서란 ‘즐거움’ ‘기쁨’ 뭐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솔직히 요즘에는 가만히 앉아 그런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는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Q. 청춘시절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을 소개해주신다면.
A. 저는 사람의 이야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어떤 삶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에서 일본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자전적 소설 <길은 여기에>가 기억에 남습니다. <빙점>이라는 소설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작가입니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어떻게 인생을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그 계기가 무엇인지 고백합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일본의 패망과 동시에 폐결핵을 얻게 됩니다. 병원에서 삶에 대한 아무런 희망 없이, 그래서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무렵 마에카와 타다시라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이 여인은 그 남자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저는 무엇보다 아야코에 대한 타다시의 한결같은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진심으로 와 닿았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에게 인생의 의미를 심어주는 타다시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을 젊은 시절에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의미에서 저의 생각과 삶의 자세를 바꾸게 한 책이지요. 요즘도 젊은 친구들에게 한 권씩 사서 선물하는 책입니다.
Q. 대학시절엔 어떤 독서가였나요? 신학을 전공하셨는데 전공 외 다른 분야의 책도 많이 읽으셨는지요?
A. 최근 주변 몇 분들과 스터디 모임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어떤 주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젊은 시절, 특정 장르에 상관없이 책을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이 읽으신 분들이라는 겁니다. 그에 비하면 젊은 날 저의 독서의 폭은 지극히 좁았다는 생각이 들죠.
대학시절 저는 ‘신학과 관련한 책이면 최고다’ ‘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장르의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폭넓은 독서를 못했지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합니다. 정말 많은 아쉬움이 있어요. 그때 내가 독서의 범위를 더 넓혔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보다 깊이 있고 넓은 사고의 틀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젊은 학생들에게 당부하곤 합니다. 닥치는 대로 읽어라. 폭넓게 읽어라. 깊이 있게 읽어라. 천천히 읽어라. 그리고 다양하게 생각해라. 그래서 생각의 폭을 넓혀라.
Q. 굉장한 다독가로 알려져 있으십니다. 최근에는 주로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요?
A. 다독가라고 하시면 정말 많이 부끄럽고요. 저는 그저 책을 사고 읽는 게 재밌고 좋습니다. 최근에는 제 전공과 관련한 영어책들을 주로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개인적인 관심사 중 하나가 ‘4차 산업혁명’이라서 자연스럽게 해당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는 방송에도 많이 출연하시는 정재승 박사님의 <열두 발자국>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박사님의 강연 중 가장 많은 호응을 받았던 12개의 강연을 묶은 책입니다. 강의내용을 녹취한 형식이어서 부담 없이 술술 읽힙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상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저자의 전공분야인 뇌과학의 관점으로 인공지능과 인간의 정신, 미래세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Q. 신학과 교수님이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신학자로서 어떤 관점으로 이 분야의 책을 읽으시나요?
A.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할 때 IT 기술 분야에서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모든 분야가 믹스 업(mix up) 된 것’이라고 하면 틀린 정의는 아닐 겁니다.
물론 제 전공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책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 혁명이 주는 미래시대의 변화와 영향들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접목할 수 있을까. 이런 시대에 종교는 어떤 영향을 발휘할 것인가.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Q. 얼마 전 ‘선교신학’이라는 학술지에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선교적 교회의 역할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셨습니다. 올 초 교내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세미나’에서는 ‘3.1운동 정신과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발제하셨고요.(▷관련기사) 4차 산업혁명과 종교는 무슨 관련이 있나요? 4차 산업혁명이 종교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또 종교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요?
A. 2016년 10월 3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의 특별 심포지엄에서 미래사회 발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세계적 경향들 가운데 하나로 ‘종교의 역할’과 ‘신앙의 중요성’이 언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기독교의 역할’이 강조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물인터넷,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는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인간관계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 의식입니다.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함께 모여 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외롭지 않습니다. 그래야 삭막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종교는 지금보다 순수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훨씬 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기쁨과 행복을 서로가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종교와 교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Q. 국제교육원 수석부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외국인 학생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업무 부담이 크실 것 같아요. 해외출장을 수없이 다니시고요. 바쁘신 와중에 책 읽는 시간은 어떻게 마련하시나요?
A. 맡은 업무가 많이 분주하고 바쁜 것은 사실입니다. 이전보다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없어졌죠. 하지만 그런 업무를 통해 이전에 관심 가지지 못했던 부분을 알아가고, 책으로 경험하지 못하는 것도 채워주기 때문에 재미있게 하려고 합니다.
책은 수시로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손이 닿을 수 있는 곳 어디에든 책이 있지요. 책상이나 자동차, 화장실에도 책이 있습니다. 가방마다 한 권씩은 들어 있고요. 킨들 같은 전자책도 자주 활용하는 편입니다. 영어 원문 서적은 우리나라에서 구입하기 어려운데, 킨들은 필요할 때 바로 접속해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Q. 요즘은 학생들도 무척 바쁩니다. 학업은 기본이고, 각종 대외활동에 취업준비 등 할 일이 산더미여서 책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감각적이고 즐길만한 콘텐츠가 도처에 널려 있어 책이 필요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청춘의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A.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세계적으로 영상 시청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요. 근본적으로 스마트폰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찾아 훑어보는 눈은 있어도 심미안은 없습니다. 풀어서 설명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TV 뉴스를 예로 들면, 어떤 사실에 대해 10~15분 정도를 보도하면서 ‘심층 분석’ 했다고 생색을 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단 10분 만에 심층에까지 닿을 수 있다면, 그게 정말 중요한 문제일까요. 정말 중요한 문제는 10분 안에 소개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면 텍스트는 결코 10분 만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고, 설명이 필요하고, 논리가 필요하지요. 우리에게 독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독서는 생각과 논리를 키워주고, 마음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논리와 상상력이 가미된 독서를 하다보면 조리 있고 분명하고, 깊이 있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당연히 글도 잘 쓰겠지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책을 빨리 읽으라, 많이 읽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생각하며 깊이 있게 읽으라고 합니다. 저자가 그때 그 시대의 독자를 위해 생각하고 염두에 두었던 것에 공감하면서 읽도록 합니다. 또 그런 내용이 많이 담긴 책을 읽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봉원영 교수의 ‘추천 책’
“이 시대의 바쁜 청춘들에게 어떤 책을 소개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고, 무겁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삶에 지혜를 줄 수 있는 책이 무얼까 고민했고, 3권을 가져왔습니다. 책에 대한 거부감 없이 조금은 가볍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담론>
신영복 저, 돌베개
요즘 인문학의 중요성이 매우 강조되고 있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가 고전을 읽는 것입니다. 이 책의 부제목은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실제 강의를 녹취해 그 내용을 다듬은 책입니다. 주제가 고전이라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강의 형식이라 읽기 정말 편합니다. 고전의 내용을 소재로 존재론, 관계론,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다룬 양서입니다. 젊은 청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침묵>
엔도 슈사쿠, 공문혜 역, 홍성사
엔도 슈사쿠는 제가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 중 단연 <침묵>이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몇 년 전 <사일런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지요. 고뇌의 순간에, 고통과 절망과 괴로움의 순간에 신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매우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주는 책입니다. 젊은이들이 살면서 경험하게 될 여러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이 책이 좋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임>
최인철 저, 21세기북스
가볍고 읽기 쉬운 책입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이 쓴 책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빨간색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빨간색으로 보입니다. 파란색 안경을 쓰면, 온통 파랗게 보이겠죠. 어떤 색의 안경을 쓰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고 긍정적이고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떤 프레임을 가져야 할까요. 가벼운 책이지만, 굉장히 좋은 통찰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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