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정론] 공정사회의 조건
[이국헌/ 삼육대 신학과 교수]
다시 공정사회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010년에 이명박 정부는 공정사회를 국정지표로 내세웠다. 인류사회로 전진하는 핵심 조건이 바로 공정사회 구축이라는 취지였다. 박근혜 정부도 선진국가 프레임으로 공정사회를 언급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구호가 실현되지 못한 채 정권이 교체되었다. 공평과 정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문재인 정부에도 요구되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카피가 대통령 취임사에 등장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로 인해 공정사회를 향한 정부의 의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공정성이 사회 이슈로 부각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학 입시의 공정성이 공정사회의 핵심 조건으로 떠올랐고, 급기야 정시 확대라는 결과에 직면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공정성 논쟁에서 정부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기반으로 한 수시보다 수능을 중심으로 한 정시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한쪽에서는 이런 결과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공정성을 수용하기에 아직도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입장 중에서 결과적 정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공정사회의 조건에 부합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지난 2011년에 공정사회추진회의에서 결의된 공정사회 실천을 위한 중점과제 중에서 교육 분야에서 선정된 과제는 “교육 희망사다리 구축”이었다. 이 과제의 기본 방향은 취약계층의 학생들이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받아 사회적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창의·인성 교육을 확대하고 공정한 진학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교육 정책은 현 정부에서도 계승되었다. 교육부는 “모두에게 기회와 희망을 주는 교육”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창의지성 및 감성교육, 자율역량 확대 교육, 미래혁신교육 등을 표방했다. 이런 정책 기조에 따르면, 공정사회의 조건으로서 공평한 교육기회 창출을 위해서는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자율적 혁신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초중고에서 자율적 혁신교육과 학교 교육 정상화를 추구하는 것이 공정사회로 가는 방향이라면 그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입시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1997년 이후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의 기조 아래 입시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리고 2007년부터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하고 수시 모집을 확대함으로써 고교교육정상화와 대학 학생선발 자율권을 확대해왔다. 다시 말해서 미래혁신교육과 공정한 진학기회라는 교육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 바로 공정사회의 조건이라고 인식했다. 현 정부도 이런 인식 아래서 최근까지 수시 위주의 입시정책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 기조가 바뀌었다.
이번 입시정책의 변화가 공정사회의 조건의 변화로 인한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공정사회의 조건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사회적 여론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조국사태 이후 학종보다는 수능이 더 공정하다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정책에까지 반영하기 위해서는 핵심 이슈들을 검토해야만 했다. 먼저, 수능 위주의 정시가 공정하지 않다는 점은 오래 전에 입증되었고, 그래서 대대적인 입시정책의 변화가 이뤄졌다. 더욱이 수능 위주의 교육은 고교 교육 정상화 및 혁신교육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그동안의 입시정책은 고고교육 정상화와 대학 학생 선발 자율권을 공정의 요소로 보았다.
하지만 학종 위주의 수시 과정에서 일부 불공정 사례가 드러났다. 여론은 그 현상의 원인 및 범위에 대한 분석 이전에 무조건적인 제도 변화를 주장했다. 정부는 긴급한 실태조사를 통해 학종의 불공정 요소들을 파악하고 여론을 반영한 개선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의 분석 결과에서조차 공정한 진학기회의 측면에서 수시가 정시보다 더 합리적임 점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정시 확대라는 입시제도 변화는 공정사회의 조건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정사회는 미래 희망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공정은 미래와 맞닿아 있다. 공정사회의 조건 중 하나인 입시정책 역시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래를 위한 혁신교육이 불가능한 입시정책은 이 시대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공정을 논하면서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점은 바로 이것이다.
※ 이국헌 교수는 12월부터 <교수신문> 칼럼 ‘대학정론’에 고정 필진으로 참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