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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가정 이야기] 맞춤형 아기와 서브웨이 샌드위치

2023.08.21 조회수 1,119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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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Gattaca

[노동욱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문학사상 편집기획위원]

영화 《가타카 Gattaca》(1997)는 부모가 배아를 선별하여 아기의 성별, 키, 질병에 대한 면역력 등을 선택할 수 있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가타카》는 유전자 편집 맞춤형 아기가 상용화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지적하는 디스토피아 영화다. 주인공 빈센트는 부모님의 성적 결합을 통한 ‘자연 임신’으로 태어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는 자연 임신이 일반적인 일이지만, 《가타카》가 그려내고 있는 상상의 미래 세계에서 그것은 희소한 일이다. 《가타카》의 세계는 인공 수정으로 유전자 편집을 한 맞춤형 아기가 일반화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빈센트와는 달리 동생인 안톤은 유전자 편집 맞춤형 아기다. 안톤이 탄생하는 과정은 자못 흥미롭다. 부부가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는 인공 수정에 성공한 4개의 수정체를 보여준다. 그리고는 부모에게 아들을 원하는지 딸을 원하는지 묻는다. 부부는 빈센트와 같이 놀 수 있는 아들을 원한다고 말한다. 안톤의 성별은 그 순간 결정된다. 의사는 안톤이 갈색 눈, 검은 머리, 좋은 피부를 갖게 될 것이며, 나쁜 인자들, 예컨대 질병을 비롯하여 조기 탈모, 근시, 비만, 폭력 성향뿐만 아니라 알코올 및 약물 중독 가능성까지 모두 제거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히려 부부가 의사에게 가벼운 질병 가능성 몇 개 정도는 남겨놓아도 괜찮지 않겠냐며 사치(?)를 부릴 정도다. 안톤은 부모의 좋은 점만을 닮은 아기로 ‘제작’된다. 의사는 설명을 마치며, 자연 임신을 천 번 한다고 해도 이런 아기는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안톤은 이렇게 태어난다.

《가타카》의 세계에서는 아기의 성별도 우연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그곳에서는 앞으로 태어날 아기가 아들일지 딸일지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특히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던 우리나라에서 《가타카》의 세계는 유토피아였으리라. 심지어 아기의 질병 가능성도 선택의 문제가 된다. 아기가 앞으로 어떤 질병을 앓게 될지 걱정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이 계획에 따라 완벽하게 진행될 뿐이다.

자연 임신을 통해 태어났기에 여러 가지 우연적 요소가 작용하여 ‘불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빈센트와는 달리, 인공 수정 맞춤형 아기로 태어난 안톤은 필연적으로 ‘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간다. 《가타카》 사회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빈센트와 같은 사람들은 사회에서 평생 극심한 차별에 시달린다. 《가타카》 사회에는 이력서가 딱히 필요하지 않다. 유전자 검사 한 번이면 그 사람이 얼마나 특출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판별해낼 수 있다. 《가타카》 사회에서는 부여 받은 유전자가 곧 이력서인 것이다. 빈센트의 꿈은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이지만, 불완전한 유전자 때문에 그의 기회는 원천 차단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 노동으로 제한되어 있다. 《가타카》 사회에서 그가 꿈을 이룰 길은 없어 보인다.

▲ 영화 《가타카》 스틸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에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먼저 ‘존재’하고, ‘본질’은 이후 정의된다. 즉, 인간이 세상에 나타나서, 자신과 맞닥뜨리고, 그 다음에 스스로를 정의한다는 것이다. 돌멩이나 책상 등의 사물과는 달리, 인간은 그 본질이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 그 본질을 만들어 간다. 돌멩이는 평생 돌멩이고 책상은 평생 책상이지만, 인간은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이다. 그러나 《가타카》 사회에서 인간이란 그 본질이 처음부터 정해지고 제한되고 규정된 한낱 돌멩이나 책상과도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유전학 지식이 더욱 발전하면,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을 통해 키, 몸무게, 피부색 등의 측면에서 원치 않는 유전 특질을 지닌 배아를 추려내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마치 영화 《가타카》에서 그려낸 상상의 미래 세계에서처럼 말이다.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은 《완벽에 대한 반론The Case against Perfection》에서 이러한 세계의 문제점은 ‘부모 됨’의 가치의 타락이라고 통찰력 있게 지적한다. 샌델은 ‘부모 됨’의 가치에 대해 신학자 윌리엄 F. 메이(William F. May)의 말을 빌려 “우리가…원하는 대로 자녀를 고를 수 없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한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부모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샌델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겸손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나는 것”과도 같다고 말한다. 샌델에 따르면, 유전자 편집 사회에서 “진짜 문제는 자녀를 설계하려는 부모의 오만함, 그리고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을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욕구”다. 요컨대, 유전자 편집 사회에서 탄생은, 아기는, 그리고 삶은 더 이상 우리에게 주어지는 신비로운 ‘선물’이 아니다.

영화 《가타카》를 본 뒤, ‘서브웨이’ 샌드위치 가게에 들러 주문을 하면서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에그마요로 주세요. 빵은 위트로 데워서 주시고, 치즈는 모짜렐라로 주시고, 소스는 랜치와 허니 머스터드로 주세요. 야채는 올리브와 할라피뇨 빼고 주세요.” 《가타카》의 세계가 현실화되었을 때, 아기도 마치 샌드위치처럼 ‘맞춤식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성별은 딸로 해주세요. 눈에 쌍꺼풀 넣어주시고, 코는 오뚝하게, 입은 앙증맞게, 피부는 뽀얗게 해주세요. 머리숱은 좀 많이 넣어주시고요. 키는 167cm, IQ는 150 정도로 맞춰주세요. 질병은 다 빼주시고요.”

이런 세상이 오면 비록 ‘부모의 기호’에 맞는 ‘완벽한’ 아기가 태어나겠지만, 서브웨이 샌드위치처럼 제조될 아기를 기다리는 부모들의 마음이 과연 이 시대의 부모들의 간절한 마음과 같을까? 엄마의 뱃속에서 탄생을 기다리는 아기가 아들이든 딸이든, 어떤 모습이든, 건강하게만 태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이 계속 존재할까? 때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때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선물’과 같이 찾아온 아기를 처음 안을 때의 그 마음이 계속 존재할까? ‘부모 됨’이란 ‘완벽한’ 아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불완전한’ 아기를 사랑하며 부모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월간 <가정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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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3.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