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가정 이야기] 육아는 스릴러다
영화 《풀 타임》
[노동욱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문학사상 편집기획위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거북은 장수하는 동물이다. 물론 거북의 종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바다거북의 경우 평균 수명이 150년 정도로 인간보다 오래 산다. 2022년 한 기사에 따르면, ‘조너선’이라는 이름의 ‘세이셸 코끼리 거북’은 190세가 되어 육지에서 사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동물로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올해도 살아 있다면 191세가 되었을 조너선은 일생의 대부분을 나폴레옹의 유배지로 알려진 남대서양 영국령 세인트헬레나섬의 주지사 관사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조너선이 주지사 관사에서 사는 동안 무려 31명의 주시사가 그 관사를 거쳐 갔다고 하니, 조너선은 세인트헬레나섬의 역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거북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거북의 장수 비결을 분석해 냄으로써 인간 장수의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분석 결과를 내 놓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과학적 분석 결과보다, 육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거북이 장수한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추측이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왜일까.
거북은 알을 낳기 위해 해안으로 와서 모래사장에 알을 낳은 뒤 곧바로 바다로 돌아간다. 거북은 육지 위에 오랫동안 머물면 장기가 손상되기 때문에, 알을 낳자마자 바다로 돌아가는 것은 거북의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거북은 출산은 하지만 육아는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기 거북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알을 깨고 태어나야 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모래사장을 엉금엉금 기어 바다에까지 도달해야 한다.
이처럼 육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자녀를 강하게(?) 키우는 거북과는 달리, 해달은 하루 종일 아기 해달을 배 위에 얹은 채 물 위에 누워 헤엄치며 육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달이 먹이를 잡으러 물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에는 아기 해달을 데려 갈 수 없으니 물 위에 놓고 간다. 아직 헤엄을 칠 수 없는 아기 해달을 어떻게 물 위에 놓아두고 갈까? 해달은 털을 손질하면 털가죽 속에 공기가 많이 들어가 몸이 물 위에 뜰 뿐만 아니라, 털이 폭신폭신해지면서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해달은 아기 해달을 물 위에 놓아두고 물속으로 잠수를 할 때면, 아기 해달의 털을 열심히 쓰다듬어 손질한다.
해달은 아기 해달이 물 위에 떠 있는 사이에 잽싸게 물속으로 잠수하여 아기 해달에게 줄 먹이를 잡아 와야 한다. 먹이를 잡은 후에는 일종의 요리(?)가 시작된다. 해달은 잡아 온 조개를 돌로 두들기거나, 두 조개를 서로 부딪쳐 깨뜨려 먹는다. 그렇게 아기 해달에게 먹이를 먹이고는 다시 아기 해달을 배 위에 얹어서 돌본다. 수달의 육아는 이러한 과정의 무한반복이다. 이렇게 고된 육아를 하는 해달의 평균 수명은 공교롭게도 20여 년에 불과하다.
해달의 육아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것은 마치 ‘워킹 맘’ & ‘워킹 대디’의 육아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워킹 맘 & 워킹 대디는 ①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안거나 업고(아기 해달을 배 위에 얹고) 육아를 한다. ②직장에 일을 하러 갈 때에는(물속으로 먹이를 잡으러 갈 때에는)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열심히 어르고 달랜다(아기 해달의 털을 열심히 쓰다듬어 손질한다). ③아이를 유치원, 어린이집 등 보육 시설에 맡긴다(아기 해달을 물 위에 띄운다).
④직장에서 일을 끝마치고는 곧바로 집에 돌아와 아이를 찾는다(먹이를 잡고는 곧바로 물 밖으로 나와 아기 해달을 찾는다). ⑤요리를 하여 아이들에게 밥을 먹인다(조개껍질을 깨뜨려 아기 해달에게 먹인다). ⑥아이를 다시 안거나 업고(아기 해달을 다시 배 위에 얹고) 무한한 육아의 굴레 속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해달의 육아 과정은 워킹 맘 & 워킹 대디의 육아 과정과 정확히 겹쳐진다.
축구 선수 박지성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축구가 더 어려운가요? 육아가 더 어려운가요?”라는 질문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육아가 더 어렵다고 했더랬다. 현역 시절 “두 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그라운드를 종회무진 뛰어다니던 박지성 선수가 축구보다 육아가 더 어렵다고 하니, 육아를 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심장이 필요한 걸까? 박지성 선수는 축구보다 육아가 더 어려운 이유에 대해, “축구는 종료 휘슬이 있지만, 육아는 종료 휘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육아는 그야말로 ‘풀 타임’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2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풀 타임》(Full Time)은 제목을 아주 적절하게 잘 붙였다고 할 수 있다. 파리 교외에서 홀로 두 아이를 기르는 ‘워킹 맘’이자 ‘싱글 맘’인 쥘리는 파리 시내의 호텔 룸메이드로 일하며 장거리 출퇴근을 한다. 쥘리의 일상은 두 아이를 깨워서 아침을 먹인 뒤, 아이들을 돌봐 주는 할머니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설상가상으로 전국적인 대중교통 파업이 발생하여 쥘리는 늘 뛰어야만 한다.
직장에서 정신없이 바쁜 일과를 보내면서도, 그 와중에 자신의 진정한 꿈을 이루기 위해 이직을 위한 인터뷰 준비까지 한다. 일을 하는 중에는 대출 이자 지급을 독촉하는 은행에서 온 전화가 끊임없이 울려 댄다. 퇴근 후에는 다시 지하철, 버스 등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아이들을 찾아 먹이고 씻기고 책 읽어주고 재운 뒤, 침대에 드러누우면 마침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쥘리는 날마다 지각 위기에 놓여 절박한 표정으로 파리 시내를 전력 질주한다.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직장에서 실수를 하여 혼이 나고, 직장에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아이 돌봐 주는 할머니에게 늦었다고 혼이 나는 쥘리는 언제나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간다.
영화의 ‘상영 시간’(running time) 88분의 상당 부분은 쥘리의 ‘뜀박질하는 시간’(running time)으로 채워진다. 이쯤 되면 이 영화의 장르가 궁금해진다. 이 영화는 소위 ‘스릴러 영화’라고 불릴 만한 요소는 하나도 갖추지 않았지만, 워킹 맘인 쥘리의 바쁘고 꽉 찬 일상, 아슬아슬한 일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스릴러 영화’가 되고 만다.
이 영화 《풀 타임》은 ‘육아는 곧 스릴러다’라고 관객들에게 말하는 듯하다. 출생율이 세계 최하위인 대한민국, 요즘도 출생률이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오늘도 ‘해달’처럼, 쥘리처럼 살아가고 있는 워킹 맘 & 워킹 대디에게 따뜻한 응원과 격려의 말 한마디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월간 <가정과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