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정식 교수 2주기 추도예배
2년 전 타계한 교양학부이 고 이정식 교수 2주기 추도예배가 2014년 4월 24일(목) 5시 30분, 다니엘관 405호에서 있었다. 미국에 사는 고 이정식 교수의 사모와 딸, 그리고 형님 및 고인의 유가족들과 교수 및 교직원 그리고 현 총장 및 전임 두 총장 등이 참석하여 고인의 삶을 기렸다.
교양학부에서는 고 이정식 교수의 추도예배를 정성을 들여 준비하였고, 형님 되시는 분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1천 만원의 장학금 기부를 약속하였다.
교양학부에서는 고 이정식 교수의 삶과 업적을 기리고,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우기 위하여 삼육동에 심기워 있는 ‘뉴튼의 사과나무’ 주변을 ‘뉴턴의 사과나무 동산’으로 조성하도록 학교 측에 요청하기로 하였다.
뉴턴의 사과나무
명지원 교수(삼육대학교 교양학부 교직과정 교수)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아래쪽으로 빨리 떨어지는 성질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통설이었다. 이탈리아 피사대학 교수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 실제는 1586년 네덜란드의 수학자·물리학자인 시몬 스테빈(Simon Stevin)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한 피사의 사탑 낙하실험을 통해 무거운 추와 가벼운 추를 동시에 낙하시켜서 두 추가 동시에 지면에 떨어지는 것을 증명했다.
갈릴레이는 물체가 낙하하는 것은 지구가 그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 즉 중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새의 깃털과 같이 가벼운 것이 천천히 떨어지는 이유는 공기의 저항 때문이며, 만일 공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진공상태라면 쇳덩이나 돌멩이나 나무, 새의 깃털 등이 모두 동시에 낙하한다고 보았다.
이 위대한 실험을 한 갈릴레이가 1642년 세상을 떠나던 해, 영국의 한 농가에서는 아이작 뉴턴이 태어나 장차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된다.
‘뉴턴의 사과나무‘(Newton’s Apple Tree)에 대한 이야기는 뉴턴과 친분이 두터웠던 과학자 윌리엄 스터클리(William Stukeley, 1687-1765)가 뉴턴의 어린 시절부터 말년까지 기록한 문서들을 묶어서 1752년에 영국왕립학회에 제출한 ‘아이작 뉴턴 경의 삶에 대한 회고록(Memoirs of Sir Isaac Newton’s life)’에 나온다. 이 책 52쪽에 이런 글이 있다. “그(뉴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그때에 사과가 떨어졌다. 그는 왜 사과는 옆이나 위가 아니라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 이유는 분명히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물질에는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한다.”
지구에 중력이 있다면, 사과에도 잡아당기는 힘이 있을 것이고, 이러한 힘이 지구와 달 사이에도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마침내 그의 나이 42세 때, 이러한 힘을 우주 전체 모든 물체에 적용시켜 만든 만유인력(law of universal gravity) 이론이 탄생하였다.
삼육동 안의 ‘뉴턴의 사과나무‘
뉴턴이 만유인력의 원리를 발견하는데 역할을 했던 ‘’뉴턴의 사과나무‘’가 삼육동 안에서 자라고 있다. ‘뉴턴의 사과나무’가 삼육동에 심기우게 된 것은 2년 전 타계한 교양학부의 고 이정식 교수에 의해서이다. 그는 우리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복잡한 수학의 원리와 인물을 쉽게 소개할까를 고민한 분이다.
수 년 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로 연구년을 떠난 그는 캠퍼스 내에 ‘뉴턴의 사과나무‘가 있어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귀국 후, ‘뉴턴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을 교무처에 제안하여 경북 영주에 있는 영농기술센터에서 8주를 분양받아 캠퍼스 내에 심는 일에 산파 역할을 하였다. 대학 캠퍼스 내에 3주, 태강삼육초등학교에 1주, 한국삼육중고등학교에 4주를 분양하였는데, 삼육동 내에서 ‘뉴턴의 사과나무‘가 이정식 교수의 소망과 함께 지금도 자라고 있다.
삼육대학교 캠퍼스 내에 심기운 ‘뉴턴의 사과나무‘는 대강당 왼쪽 스쿨버스 정거장 뒤편에 조성된 작은 동산 내에 있다. 이 동산을 나는 ‘뉴턴의 동산’이라고 불는데, 놓여있는 벤치에 앉으면 마치 ‘뉴턴의 상상의 벤치’에 앉아서 과학적 상상력과 사고로 만유인력이라는 물리적 현상을 발견한 뉴턴이 된 느낌이다. 그 옆에는 아직 성인 허리에도 못 미치는 작은 뉴턴의 나무가 있다. 예술, 인문사회과학, 신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뉴턴의 사과나무’를 더 많이 찾아 벤치에 앉아 뉴턴의 직관과 상상과 영감을 느껴보면 좋겠다.
고 이정식 교수는 평소 아이디어가 많기로 알려져 있다. 이정식 교수의 제안에 의하여 2006년 3월 14일이 공식적인 우리 대학 ‘파이데이(π-Day)’로 제정되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포항공대의 동아리 ‘마르쿠스’가 파이데이에 행사를 개최한 것 외에 학교 단위로 공식 행사를 거행하는 대학은 없었다. 파이데이에는 원주율 암기하기, 원주율과 나의 관계 알아보기, 원주율 숫자 맞추기, 하노이의 탑 쌓기, 루비스 큐브 맞추기 등과 같은 수학과 관련된 여러 행사를 통하여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흥미를 진작시키고 동기를 부여하였는데, 고 이정식 교수는 운영 경비에 사비를 내놓기도 하였다. 그는 우표수집이 취미였으며 장차 우표박물관 건립도 계획하고 있었다. 우리대학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에도 기여하였으며, 우리 대학 박물관에 골동품인 기계식전자계산기들을 기증하였다.
2014년 4월 24일(목)에 고 이정식 교수 추도예배가 요한관에서 있었다. 많은 교수 및 교직원과 현 그리고 전임 두 총장도 고인을 추모하였다. 추도예배에 참석한 고인의 형님께서 동생의 삶을 기리는 추도예배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1천 만원의 장학금을 희사하였다. 어디에 있든지 삼육대학교를 지원하겠노라는 약속과 함께.
우리는 아이디어와 호기심이 많고 학생을 사랑했던 고 이정식 교수의 모습을 뉴턴이 자신을 향하여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세상에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바닷가에서 노는 소년이라고 생각했다. 내 앞에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은 진리라는 거대한 대양이 펼쳐져 있고, 가끔씩 보통 것보다 더 매끈한 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질을 찾고 즐거워하는 소년 말이다.”
삼육동 안에서 자라는 ‘뉴턴의 사과나무‘가 열리는 날을 고대한다. <삼육대신문 제380호> 2014년 5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