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벽 근무 중 쓰러진 간호사의 안타까운 죽음
[김일옥 삼육대 간호대학 교수 / 대한간호협회 이사]
최근 서울의 한 초대형 병원에서 간호사가 새벽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져 본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수술을 담당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고 끝내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이 병원은 국내 최대 규모이자 세계 50위 내 초대형 병원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진과 시설이 충분하게 갖춰져 있다. 그러나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학회 참석 중이라는 이유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고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사망했다.
이 사고는 다른 직장도 아닌 병원 내에서 최고의 의료진들과 일하는 간호사가 정작 아팠을 때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한 어이 없고 안타까운 비극이다. 더욱이 이 병원은 정부가 승인한 ‘뇌졸중 적정성 평가’ 최우수 등급을 받은 바 있어 더욱 안타깝다. 세계적 수준의 의료서비스 이면에는 의료진 부족과 과로, 모호한 업무 범위, 스트레스가 일상화돼 있다. 의료 이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배에 달하는 반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와 간호사 수는 최저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또 생명과 직결되는 격무 과의 전공의 기피 현상 심화로 외과 계열의 의사 수는 더욱 부족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노동자로서 의료인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의사나 간호사는 언제나 바쁜 게 당연한가? 전공의들의 과로 문제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법’으로 어느 정도 해소됐다. 그러나 48만 명의 간호사와 80만 명 이상의 간호조무사 등 간호 관련 인력은 아직 뚜렷한 법적 보호를 못 받고 있다. 연속 수련 시간제한 및 휴식 시간을 보장하는 일명 ‘전공의법’ 시행 이후 오히려 일부 업무는 간호사에게 전가돼 업무 부담은 오히려 늘었다.
의료진의 생명조차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병원은 명예에 집착해 사태를 묵인하고 은폐하기보다는 고인의 사망 경위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과 사인의 업무 연관성 조사에 협조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천명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의료기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나이팅게일 선서의 공통점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또 어렵고 힘들더라도 생명을 구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기보다 덜 힘들면서도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과로 우수 인재가 쏠리는 현상을 의사들의 철학 부재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근본적인 원인을 성찰해 보고 대책을 논의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뉴시스 https://newsis.com/view/?id=NISX20220803_0001965781&cID=10201&pID=1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