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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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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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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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 기도력
11일/하나님께 순종하라- 1일 - 품성이 생애에 영향을 미침
- 2일 - 악한 품성이 배도로 이끔
- 3일 - 하나님을 피하기 위해 어떤 짓도 서슴지 않을 사람들이 있음
- 4일 - 바벨탑 건축자들은 여전히 존재함
- 5일 - 아브라함의 믿음이 시험을 받음
- 6일 - 선택의 결과
- 7일 - 롯와 경험은 경고임
- 8일 - 거주지 선택의 중요성
- 9일 - 우리의 간구를 들으심
- 10일 - 천사들이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음
- 11일 - 하나님께 순종하라
- 12일 -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경 진리를 찾으라
- 13일 - 구원의 초청을 물리치지 말라
- 14일 - 하늘의 유업을 얻기 위해 힘쓰라
- 15일 -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 16일 - 아브라함의 믿음의 실패는 우리에게 경고가 됨
- 17일 - 믿음에 대한 최고의 시험
- 18일 - 야곱과 에서의 품성이 대조됨
- 19일 - 그대의 장자의 명분을 멸시하지 말라
- 20일 -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 하늘의 사다리를 바라보라
- 21일 - 진리는 우리를 하늘로 나아가게 만듦
- 22일 - 그리스도는 하늘 가는 우리의 유일한 사닥다리
- 23일 - 야곱의 경험에서 배울 귀중한 교훈들
- 24일 - 하나님 안에서 안전함
- 25일 - 우리의 품성은 자녀들을 통해 자주 드러남
- 26일 - 환경에 대한 반응이 참된 품성을 드러내 줌
- 27일 - 진리가 결국 승리를 얻을 것임
- 28일 - 선함은 참된 위대함
- 29일 - 환경을 다스리라
- 30일 - 행동으로 드러나는 내적 품성
- 31일 - 악덕이 덕성을 이기지 못함
하나님께 순종하라
주제성구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치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 2:4)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그대가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듣고 있다. 참으로 넷째 계명의 요구가 무의미하게 보이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주님의 뜻에 대한 습관적인 복종이 순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진지하게,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는가”, “나 자신이나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편리하고 마음에 드는가”가 아니라 “나의 주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라고 묻도록 이끌지 않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받고도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거나 등한히 하면 그 영혼의 구원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도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모든 율법에 순종 하는 것이 영생에 절대적으로 긴요하다는 사실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문제인가? 자아나 이기적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영혼의 구원을 확보하는 것 이것이 불가해(不可解)한 신비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을 순종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범하고도 하늘에 갈 수 있다는 어떤 보증을 우리 에게 주고 있는가? 그렇다면,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하나님의 전체 요구 사항은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다. 홍수 때에 멸망당한 구세계의 거민들은 하나님의 요구 사항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형별을 받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율법을 범한 데 대한 최종적인 형별을 집행하시기에는 너무나 선하시기에 그들을 홍수로 휩쓸어 곧바로 영광에 들어가게 만드셨는가? 소돔 사람들은 불순종으로 인해 형벌을 받고 롯만 구원받았는가? 아니면 소돔의 거민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불을 날개 삼아 직접 영광으로 날아 들어갔는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순종해야 한다. 주저하지 않고, 그리고 순종 없이 구원받을 어떤 길은 없는지 찾지 않고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은 어떤 다른 길로 올라가는 길일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내가 나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사오며”라고하늘 의 폐하께서 말씀하신다. … 우리는 그저 하늘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율법을 범한 형벌로부터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계명들에 순종해야 한다. 죄인의 구원은 범죄하기를 그치고 저 범해진 율법에 순종하는데 … 달려있다. 어떤 사람도 그들이 할 수 있는한 대담하게 죄를 지어도 무방하다고 느끼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자기 형편에 좋을 대로 단정하고〕 믿어서는 안 된다.…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가능한 한 그 가장자리에 가까이 나아가는 모험을 하면서 , 가능한 한 멀찌감치 떨어 져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서글픈 결심이다. -서신 35b, 1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