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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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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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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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 기도력
8일/모든 시간이 귀중함- 1일 - 요한계시록을 연구해야 할 시간
- 2일 - 우리의 신령한 옹호자를 의지함
- 3일 - 우리 시대를 위한 기별
- 4일 - 지혜롭게 시간을 사용하며 신실하게 일함
- 5일 - 하나님의 훈련 과정에 복종함
- 6일 - 봉사를 위한 기회 증진
- 7일 - 규칙성과 신속함은 신앙의 의무임
- 8일 - 모든 시간이 귀중함
- 9일 - 묻힌 달란트도 활용해야 함
- 10일 - 시간을 속량하는 법
- 11일 - 한 달란트라도 지혜롭게 사용함
- 12일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재능과 재산을 사용함
- 13일 - 열심히 일할 때
- 14일 - 재정과 활동적인 봉사 둘 다 필요함
- 15일 - 빈둥거리기보다는 차라리 낮은 임금으로라도 일함
- 16일 - 모든 영적 은사가 중요함
- 17일 - 천한 일에 만족함
- 18일 - 모든 사람에게 은사가 있으며 책임이 따름
- 19일 - 적은 달란트도 가치 있으며 증진할 수 있음
- 20일 - 그대가 처한 곳에서 충실히 행하라
- 21일 - 잃은 자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과 함께 일함
- 22일 - 충실하게 활용한 한 달란트, 다른 달란트도 얻을 것임
- 23일 - 신실하게 달란트를 활용한 자들은 “잘하였도다” 칭찬을 들을 것임
- 24일 - 언어 재능을 잘 활용함
- 25일 - 언어로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냄
- 26일 - 언어와 감화력의 선물을 확실히 사용함
- 27일 - 구주에 대해 쾌활하게 말함
- 28일 - 감화력, 선이나 악을 위한 하나의 힘
- 29일 - 올바른 감화력 사용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수임
- 30일 - 우리 봉사는 하늘 승인을 받아야 함
- 31일 -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선물을 사용함
모든 시간이 귀중함
주제성구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잠 6 : 6, 9).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사람을 당신의 사업에 사용하지 않으신다. 생각이 깊고 친절과 사랑이 많고 또 열심 있는 일꾼을 원하신다. 활동적으로 노력하면 곧 유익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게으름은 타락함을 말해 준다. 정신의 모든 기능과 신체의 모든 골격과 사지의 모든 근육은 하나님께서 우리 신체의 모든 기능을 쉬지 않고 사용하도록 계획하셨음을 보여 준다. 쓸데없이 낮잠 자는 것으로 낮 시간을 보내는 자는 금 같은 귀중한 시간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 면밀하게 일하며 시간을 절약하는 습관이 안 된 자는 신속하고 질서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규칙을 세워야 한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산더미같이 쌓인 사무를 능히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규율과 질서를 철저히 준수한 까닭이다. 각 서류마다 일자를 기록하여 구분하여 두었으므로 잘못 놓인 서류를 찾는 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공부에 부지런하고 지식을 획득하는 일에 열심 하여 한 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 인내하며 노력하기만 하면 그리스도인으로 또는 유력한 인물로 어떠한 중요한 위치에든지 능히 도달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어릴 때부터 확고한 목적이 없어 느릿느릿한 습관을 길러 왔으므로 강단에서나 혹은 실업계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한다. 저들은 어떠한 일에나 방심하고 소홀히 행한다. 안일하고 태만한 자를 고치기 위해서 이따금 갑작스런 일시적 충격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일은 오래 참고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실업가들이 규칙적으로 제시간에 잠자고 일어나며 또 제시간에 식사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성공하게 된다. 이와 같이 세상 일에도 질서와 규칙이 필요한 것이라면, 주의 사업에는 얼마나 더 질서와 규칙이 필요하겠는가! 많은 사람은 상쾌하고 명랑한 아침 시간을 자리에 누워서 허송한다. 이런 귀중한 시간은 일단 놓쳐 버린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은 일시적인 손실만이 아니라 영원한 손실이다. 하루에 한 시간씩 잃어버린다면 일 년이면 몇 시간이 낭비되겠는가! 그러므로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이것을 마음 가운데 기억하고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잃어버린 시간에 대하여 무엇이라 변명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복음 교역자, 277,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