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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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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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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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 기도력
4일/광신과 야단법석이 믿음의 증거가 아님- 1일 - 예수님을 통한 새로운 생활 방식
- 2일 - 예수님은 전심어린 헌신을 요구하심
- 3일 - 하나님 경고를 잘 듣지 않음
- 4일 - 광신과 야단법석이 믿음의 증거가 아님
- 5일 - 하나님은 비속한 무질서에 기뻐하지 않으심
- 6일 - 그리스도를 따르고 원수를 물리침
- 7일 - 죄에 대항해야 하는 결단적인 노력
- 8일 - 모든 일에 절제함
- 9일 - 자녀 훈련은 신성한 책임
- 10일 - 건강에 공헌하는 사업과 실행
- 11일 - 시련을 당할 때 예수님께 매달려야 함
- 12일 -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고난에도 족함
- 13일 - 남편은 사려 깊고 명랑해야 함
- 14일 - 우리의 가장 큰 필요 성경적 거룩함
- 15일 - 작고 일상적인 업무에 충실함
- 16일 - 시련에 대처하며 영적 힘을 강하게 함
- 17일 - 대가가 무엇이든지 고결성을 유지함
- 18일 - 동기가 우리 행동 가치를 결정함
- 19일 - 예수님과 가까이 하면 그분과 같이 됨
- 20일 - 참 행복을 찾기 위해 하나님께 순종함
- 21일 - 시련의 때 하나님의 크신 자비를 재음미함
- 22일 - 빛을 받아 그 안에서 걸음
- 23일 - 사랑, 동정, 친절을 나타냄
- 24일 - 다른 사람들을 고발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중재함
- 25일 - 이타적으로 살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침
- 26일 - 하등한 정욕을 복종시킴
- 27일 - 예수의 형상 반영하기
- 28일 - 타락한 자들에게도 희망을 주어야 함
- 29일 - 기도하고 말씀 연구를 위해 시간을 냄
- 30일 - 인간의 견해가 아닌 그리스도의 말씀을 연구함
- 31일 - 그리스도의 사업에 성령을 활용함
광신과 야단법석이 믿음의 증거가 아님
주제성구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 : 18, 19).
오류가 먼저 뽑혀야 한다. 그러면 좋은 씨에서 싹이 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열매를 맺도록 땅이 준비된다. 유일한 치료제는 철저한 훈련과 조직이다. 광신의 정신이 … 안식일 준수자들 중 특정 부류의 사람을 지배했다. 그들은 진리의 샘에서 한 모금 가볍게 마셨으므로, 셋째 천사 기별의 정신을 모른다. 그들의 광신적 견해가 고쳐지지 않는 한 이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1854년의 운동에 관련되었던 몇 사람은 악인의 부활 부인(否認), 미래의 시대와 같은 오류의 견해를 가지고 와서, 그 견해와 그들의 과거 경험을 셋째 천사의 기별에 연합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일치하지 않는다. 악인의 부활 부인과 미래 시대에 대한 그들의 독특한 견해는, 사단이 영혼들을 멸망시키기 위한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키고자 마지막 때의 이단설을 통하여 역사해 온 엄청난 오류들이다. 이 오류들은 하늘에서 온 기별과 일치할 수 없다. 이런 사람 중 어떤 사람은 그들이 선물이라고 부르고 주님께서 교회에 두셨다고 주장하는 것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뿐 아니라 주님과 온 하늘도 모르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방언이라고 부르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무의미한 말을 한다. 그런 선물은 큰 기만자의 도움을 받은 남녀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광신, 거짓 흥분, 거짓으로 지껄이는 방언, 떠드는 것 등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두신 선물로 간주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기만당했다. 이 모든 것의 열매는 선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16). 어떤 사람들은 강력하고 즐거운 시간이 없으면 집회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것을 위하여 일하기 때문에 감정을 흥분시킨다. 그러나 그런 집회의 영향은 유익이 되지 않는다. 즐거운 감정의 고조가 사라지면, 그들은 집회 전보다 더 낮은 상태로 떨어져 버린다. 그들의 즐거움은 올바른 근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적 향상에 가장 유익한 집회는 엄숙한 것과 마음을 깊이 살피는 것으로 특징 지운다.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알고자 노력하고, 열렬하고 또한 깊은 겸손으로 그리스도를 배우기 위해 애쓰게 된다(교회증언 1권, 411,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