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화잇 기도력

오늘의 말씀

3. 1

멸시를 받아서 싫어버린바 됨

주제성구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바 되었으며 간교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은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 53:3).

하나님의 아들의 30년간의 지상 생애 동안 그의 마음을 찢는 듯 한 고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아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말구유로부터 갈바리까지의 길은 비애와 슬픔의 그림자로 가리어져 있었다. 그는 슬픔의 사람으로서 인간의 언어가 묘사할 수 없으리만큼 마음의 쓰라림을 찾으셨다. 그는 실제로 “내게 있는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찌어다”(애 1:12)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의 고통은 심령의 가장 격심한 고통이었는바 사람이 어찌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심령의 고통을 동정할 수 있었으랴! 범법자의 형벌을 당하시면서 갈바리의 길을 걸어가실 때에 완전한 증오심을 가지고 죄를 미워하시면서도 오히려 그는 온 세상 죄를 자기의 영혼에게 끌어 모으셨다. 그는 죄가 없으셨으나 죄인의 형벌을 담당하셨고 무죄하였으나 자신을 내어주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죄의 형벌을 짊어지셨다. 각 영혼의 죄의 형벌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짊어지신바 되었다. 모든 죄의 무게는 세상의 구주의 거룩한 심령을 내려 눌렀다. 죄를 알지 못하는 이가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로 여겨짐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인간의 성정(性情)을 취하심으로써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상함을 받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찔림을 받는 곳에 자신을 두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채찍으로 나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범죄함이 그에게 놓여졌으므로 그는 모든 죄인의 죄를 담당하셨다.…“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히 2:3)(RH, Dec. 20, 1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