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화잇 기도력

오늘의 말씀

3. 2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주제성구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작고 가련한 아기로 태어났는지 알 수 없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아들들과는 다른 형상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실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방법이 아니었다. 그분은 인간 가족의 한 식구로 오셔서 하늘과 땅 앞에 한 사람으로 서셨다. 또한 인간의 형상을 취하셨고 인간을 대신할 것을 서약하셨으며 죄인들이 갚아야 할 빚을 친히 갚아 주셨다. 사단은 하나님이 그분의 손 밖에 있는 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주님께서는 순결한 생애를 사심으로 그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증거하셨다. nfl가 이 지상에 아기로 오신 그리스도의 강림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 사실에 놀라게 된다. 베들레헴의 말구유의 힘없는 아기가 여전히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라는 사실이 과연 가능할까?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그분께서 이 세상을 지으셨고 우리를 위하여 보잘것없는 아기가 되셨음을 우리는 믿을 수 있다. 어떤 천사보다도 높으시고 하늘 보좌 위의 아버지만큼이나 위대하신 분이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되었고, 그 사실 때문에 우리는 타락한 인류 가운데 살고 있지만 소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육을 취하신 그리스도를 볼 때 우리는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와 아버지 하나님의 드러난 형상을 보게 될 것이다(기별 3권, 127, 128). 인간의 모습을 하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생각하면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오묘함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베들레헴 말구유 속의 힘없는 아기와 그리스도의 신성 사이에 있는 넓은 차이를 생각해 보라. 어떻게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과 가련한 아기와의 그 거리를 측량할 수 있겠는가? 어떤 천사들보다 높으시고 위엄과 영광이 아버지와 동등하신 그분이 지금도 인성의 옷을 입고 계시지 않는가! 신성과 인성이 오묘하게 섞이어 인간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연합 속에서 우리는 타락한 인류를 위한 소망을 찾는다.(ST 1896.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