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뇌에 숨겨진 행복의 비밀
[안재순 상담심리학과 교수]
“내일 학교에 가야 하니까 딱 5분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어느새 새벽 5시가 되었어요. 뭐에 홀린 거 같아요.” 그리고 잠이 들어 5교시 수업에 지각을 하게 되었다는 대학생의 말이다.
“네 살 된 아들이 눈을 자꾸 비비고 깜박거려 안과에 갔는데 근시가 많이 진행되어 안경을 써야 한대요.” 엄마는 둘째를 출산하고 맞벌이 생활이 버거웠다. 아빠는 밥 먹을 때마다 씨름하지 않으려고, 피곤한데 자꾸 와서 놀아 달라고 할 때마다 칭얼거리는 아들을 달래려고, 스마트폰을 아들에게 쥐여 줬는데 이제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고 하소연했다.
은퇴 후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진 어느 중년 남편은 유튜브에서 정치시사 콘텐츠를 시청하다가 “스마트폰으로 야한 동영상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서 처음 음란물을 접한 후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동영상 앱을 켜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왜 온갖 것들에 중독이 되는가?
마음이 약하거나 의지가 박약해서일까? 외롭고 공허한 마음이 많아서일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일까? 우울증에 빠져서일까? 수준이 낮은 쾌락주의자이기 때문일까? 그럼 평상시 긍정적이고 즐겁게 살면 중독되지 않을까?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뇌를 가진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독될 수 있다.
1954년 캐나다 맥길 대학의 제임스 올즈와 밀러는 쥐의 뇌 특정 부위를 전기로 자극하는 실험 장치를 고안했다. 실험 중 쥐 뇌의 시상하부에 우연히 전기 자극이 되었는데 쥐가 전기 자극을 받았던 장소로 계속 돌아왔다. 그 이유는 거기에서 어떤 쾌감을 얻었던 것이다.
그 후 다시 쥐 뇌의 시상하부에 직접 자극을 줄 수 있는 지렛대를 개발했다. 그 결과 어떤 쥐는 한 시간 동안 7천 번씩 지렛대를 누르다가 거품을 물면서 쓰러졌다. 새끼 쥐가 옆에 있어도 돌보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며 계속 그 지렛대를 눌렀다. 보상이 강한 약물의 경우 쥐는 먹이, 물 심지어 교미할 수 있는 짝조차도 무시하고 더 이상 지쳐서 누를 수 없을 때까지 지렛대를 계속 눌렀다.
이때 자극된 뇌의 부위를 쾌감 회로(보상 영역)라 정의했으며 이곳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 도파민이 전전두엽으로 전달될 때 쥐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도파민은 이 쾌감을 주는 행동을 기억하고 반복하게 만드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쥐가 지렛대를 누르면 쥐는 쾌감을 느끼고, 이 쾌감은 쥐로 하여금 지렛대를 누르게 만들었다. 이러한 반복 행동은 쾌감 회로의 변형을 가져와 습관이 되고 중독이 된다. 이러한 보상회로는 사람의 뇌에도 존재한다.
복권이 당첨되었거나 주식과 코인 투자에서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큰 수입을 얻었을 경우 이것은 큰 행운이기도 하지만 불행의 시작이요 중독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강렬한 쾌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 뇌의 보상회로가 작동하게 되어 중독이 될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인간의 뇌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중독자가 될 수 있다. 연세대 김병규 교수는 중독의 시대를 사는 개인을 ‘호모 아딕투스(Homo addictus)’라고 이름 지으며, 사람들이 ‘자신의 보상회로를 수시로 자극하고 중독에 빠진’다고 했다.
왜 청소년에게 중독은 위험한가?
우리의 뇌는 일반적이지 않은 쾌감을 억제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뇌는 이마에 있는 전전두엽에서 글루타메이트라는 물질을 분비하면서 이러한 쾌감을 차단하고 진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전전두엽은 충동과 감정을 조절하며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등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모든 부분을 관장하는 인간다움의 뇌이다. 따라서 전전두엽은 다양한 감정과 욕망, 충동으로 가득한 마음을 다스리고 합리적인 판단에 의거하여 윤리와 도덕의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게 한다.
그런데 전전두엽은 어릴 때는 아직 덜 발달되었다가 20대 초중반까지 계속 성장하며 발달하여 완성된다. 미성숙한 전전두엽을 가진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중독성 물질을 사용하거나 중독 행위를 할 경우에 전전두엽이 파괴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보상 회로에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파괴된 전전두엽은 충동과 감정을 조절하는 제어 장치가 손상되어 마치 쾌락을 위해 지렛대만 누르는 쥐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중독은 성인에 비해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훨씬 더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중독(좋지 않는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산업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과거 농경 시대에는 거의 보기 어려웠던 성인병이 많아져서 건강 관리가 필요했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는 수많은 중독 물질(술, 약물, 니코틴, 카페인 등)과 중독 행위(인터넷, 스마트폰, 게임, 도박, 쇼핑, 성형, 미디어, 투자 등)로 인한 유해 환경으로부터 우리의 뇌를 관리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뇌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관리할 수 있을까?
첫째, 우리가 중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중독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는 매우 약하고 중독을 만나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은 지치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고통이 오면 그것으로부터 회피하거나 될 수 있는 한 빨리 벗어나려고 한다. 그때 술이나 스마트폰이나 담배나 약물, 영상물을 찾는 대신 잠깐 멈춰 서서 ‘내가 뭔가 결핍감을 느끼고 있구나. 왜 그럴까? 일에 지쳐서 힘든 걸까, 마음이 힘든 걸까, 외로운 걸까, 일이 안 풀려서 낙심된 것일까 걱정 근심으로 불안한 것일까?”라고 자신의 마음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마음을 살피고 돌봐주어야 한다. 평생에 걸쳐 건강 관리를 해야 하는 것처럼 마음 관리도 해야 한다.
둘째, 상대를 이길 수 없는 싸움은 도망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다. 강한 의지로도 중독을 이길 수 없다. 의지가 강한 사람은 본인이 중독될 만한 상황을 피하는 사람이다. 중독과 자신을 어떻게 해서든지 분리하고 격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답이다. 휴대폰을 침실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기, 게임기를 창고에 넣기, 신용카드는 자르고 오로지 현금만 사용하기, 홈쇼핑 채널 보지 않기 등은 물리적으로 격리하는 방법 중 하나다.
셋째,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듣거나 성공했을 때, 비록 실패했을 때도 격려를 받으면 도파민이 즉시 뇌에 공급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긍정적 도파민이 많이 나오게 하려면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누고 베풀며 누군가를 도와줄 때이다. 넷째, 취침과 기상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키는 것이 뇌 관리의 시작이다. 쉬는 수면과 정리하는 수면을 합하여 8시간을 자게 되면 뇌는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상태가 된다.
다섯째, 행복은 ‘한 방’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불꽃놀이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했다. 아무리 큰 기쁨이 있더라도 우리 뇌는 곧바로 적응을 한 후 잊어버린다. 오히려 행복의 역치가 너무 높아져서 작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 뇌가 되고, 부족한 것만 보면서 불만족스럽다. 작은 일을 차근 차근 성취하기, 산책하기, 해돋이 구경하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 먹기, 운동하기, 한 잔의 시원한 물과 맑은 공기를 마실 때 도파민 수치는 증가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이 충만해진다.
월간 <가정과 건강>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