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36℃] 뉴욕의 한국어교사…K-컬처의 중심에 서다
[열정 36℃] (8) 뉴욕 위스퍼링 파인즈 스쿨 한국어교사 이용근(상담심리학과 03학번) 동문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이젠 ‘한국’을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 항상 부연설명을 해야 했죠.”
지난 9월 21일 뉴욕한국문화원. UN 총회 참석차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뉴욕을 방문한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뉴욕의 차세대 한인 청년’ 11명과 마주 앉았다.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한국인 최초로 토니 어워즈 무대에서 공연한 뮤지컬배우 황주민,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최초 한국 수석 무용수 서희, 미국 육군사관학교 태권도팀 사범 강수지,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악장 박수현 바이올리니스트, 첼시마켓에서 퓨전 한식당을 운영하는 에스더 최, 유수의 국제 영화제를 휩쓴 김진기 애니메이션 감독, 뉴욕 사립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용근 교사 등 이날 한인 청년들은 알록달록한 빈백에 앉아 김정숙 여사와 편안한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불과 몇 년 전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K팝을 듣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한식을 먹고, 한국어를 공부한다면서 뉴욕 문화예술계에서 영향력을 확장해가고 있는 한류의 오늘을 생생히 증언했다.
이날 뉴욕의 차세대 한인 청년 11인 중 한 명으로 초청된 한국어교사 이용근 씨는 우리 대학 동문(상담심리학과 03학번)이다. 2012년 상담심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그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한 사립학교에 한국어반을 처음으로 개설하고, 10년째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간담회에서 부모님과 한식 만들기, 한국의 전통문화 알리기, 한국어책 읽기 등 다양한 한국어 활동을 소개하면서, 뉴욕 내 한류와 한국어교육의 현황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한류의 뿌리는 한국어. ‘대중문화 한류’는 ‘한국어 한류’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어 교육현장의 첨단에서 한국과 한국어를 알리고 있는 이용근 동문을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자신의 일터인 교실에서 줌(Zoom)에 접속했다.
뉴욕의 차세대 한인 청년
– 간담회에는 어떻게 초청되신 건가요?
“대통령님 방미 10일 전쯤 뉴욕총영사관 영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이런 행사가 있어서 초청하고 싶은데 시간이 괜찮겠느냐고요. 뉴욕한국어교육원 부원장님이 절 추천했다고 하시더라고요.”
–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뉴욕의 차세대 한인 청년’ 중에서 한국어교사가 꼽혔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영사님이 처음 연락하셨을 때 ‘한국어교육’을 엄밀히 문화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언어는 민족의 얼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제가 한국어를 가르칠 때 모든 문화를 아우르거든요. 한식과 한국음악을 소개하고 여러 공연이나 한글 창제 원리를 가르치다 보면 한국어에 한국 사람들의 생각과 우주를 보는 사상까지 포함돼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초청하신 것 같아요.”
– 간담회에선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뉴욕에서 한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점이나 어려운 점, 그리고 자긍심과 위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랑 비슷한 또래 청년들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지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김정숙 여사님이 굉장히 친절하신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문화에 정말 관심이 많으시구나 하는 게 느껴졌죠.”
– 초청자들의 면면이 정말 다양하더군요.
“이민 2세인 분도 있었어요. 어렸을 땐 자신이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서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찾았다고 했어요. 참가자 모두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격이 많이 높아졌고, 덕분에 각자 있는 영역에서 인정받을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에 공감했죠. 서로 카톡 아이디도 주고받으면서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니까 앞으로 계속 교류하기로 했어요. 다들 뉴욕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생활하고 있는 걸 보니 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이 많이 됐어요.”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해요
이용근 동문이 재직하고 있는 위스퍼링 파인즈 스쿨(Whispering Pines school)은 뉴욕 교외 롱아일랜드 지역에 위치해 있다. 전교생 70여 명 정도의 소규모 사립학교로, 프리케이(Pre-k·한국의 유아원)부터 8학년(중학교 2학년)까지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한국어반은 이 동문이 이 학교에 온 2012년 처음 개설됐다. 지금은 스페인어와 함께 정식 제2외국어 과목으로 채택돼 전교생이 1주일에 두 번씩 한국어를 배운다.
– 상담심리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어떤 과정으로 뉴욕에서 한국어교사가 되신 건가요?
“졸업 앞두고 취업준비를 하다가 학교 도서관 앞에서 우연히 친한 동생을 만났어요. 뉴욕 한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데 지원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요. 봉사활동이고 정식 교사 자리는 아니어서 고민했지만, 경험 삼아 영어공부도 할 겸 지원했어요. 운이 좋게 잘 받아들여져서 1년을 생활했어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학교에서 정식 교사직을 제안했어요. 신분이나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해서 남아있게 됐습니다.”
– 한국어교사를 계속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계기가 있었나요?
“너무 현실적인 건데, 미국에 있으려면 신분이 보장돼야 해요. 특히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스폰서를 구해야 하는데,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여러 고민을 하다가 뉴욕에 계속 있고 싶어서 이 학교에서 한국어교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 적성에 맞았나요?
“저보단 학생들이 좋아했어요. 저는 솔직히 좀 힘들었어요(웃음). 중학교 3학년 때 막연하게 국어 교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국어를 좋아하고 잘해서 선생님이 국어선생님 하면 참 잘하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렇다고 직업으로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일을 계속하다 보니 참 재미있고 보람차더라고요. 아이들이 일단 한국을 좋아하게 되고,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이바지하지 않나 하고 작게나마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어요.”
– 처음 한국어를 가르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미국 학생들은 한국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경쟁심이 없어요(웃음). 미국에서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실질적인 동인도 없거든요. 한국에서는 시험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하잖아요. 그런데 여기 학생들은 공부를 안 해요(웃음). 처음에는 이런 아이들에게 어떻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할지, 한국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 납득시키고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려웠죠.”
–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시행착오 끝에 느낀 건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해요.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동기를 찾기가 어려워요. 아무리 학교에서 한국어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도 재미가 없으면 안 듣거든요. 저는 음식을 많이 먹였어요(웃음). 함께 김치를 담그고, 컵라면을 끓여서 그 김치와 밥을 먹으면서 단어를 외우게 해요. 또 저희 학교는 2년에 한 번씩 한국으로 언어연수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게 아이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돼요. ‘너희 공부 안 하면 한국에 안 데려간다’고 엄포를 놓으면 열심히 하더라고요(웃음). 저만의 노하우죠.“
강남 영어강사 출신 이사장
– 미국에서 한국어교사가 되려면 어떤 자격요건을 갖춰야 하나요?
“고민이 많이 되는 질문인데요.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고 교사 채용 기준도 천차만별이라 일반화해서 말하긴 힘들어요. 그래도 비교적 수월한 건 사립학교예요. 사립학교는 특별히 교사자격증을 요구하지 않아요. 대신 저희 학교는 앤드류스대학교와 연계해서 온라인 클래스로 필수과목 학점을 이수하면 자격증이 나오고, 5년마다 갱신하는 방식이에요. 물론 공립학교에서 일하려면 각 주에서 요구하는 교사자격증을 별도로 취득해야겠죠. 또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해요.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을 가르친다면, 한국어를 아예 못 하기 때문에 영어로 가르쳐야 하니까요.”
– 미국에서 한국어교사 수요가 많나요?
“미국 전체적으로 한국어 클래스 수요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대학에서 한국어를 교양과목으로 채택하는 경우도 많고요. 한류의 영향이 가장 크죠. 또 1세대 한국어교사들이 요즘 많이 은퇴하는 시기예요. 미국 한국어교사 단체 채팅방이 있는데 구인공고가 자주 올라와요.
다만 한국어 하나만 해서는 좀 힘든 것 같아요. 한국어교사를 찾는 수요가 많아졌지만, 한국어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가까운 뉴욕주립대만 해도 한국어학과가 있어서 매년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엔 한국어 플러스 자신만의 스페셜티(Specialty)가 있어야 해요. 가령 한국인들이 잘하는 게 과학이나 수학이에요. 그래서 수학교사를 하면서 한국어도 하면 채용 기회가 굉장히 많아요. 물론 뭐든 개인의 역량에 달렸죠. 그래도 그렇게 높은 진입장벽은 아니에요.“
– 급여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미국에서 일반 중산층 정도로 생활하고 있어요. 사립학교는 다 다르지만, 저희 학교는 공립보다는 조금 적어요. 그래도 여러 복지나 퇴직금, 연금 등이 보장돼서 따지면 대체로 비슷비슷 한 것 같아요.”
– 재직하고 계신 학교에서 한국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이사장님 의지였어요. 이사장님이 2009년 강남에서 6개월 정도 영어강사로 일하셨대요. 그때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매료됐다고 해요. 미국으로 돌아와 학교 이사장을 맡으면서 언어 특성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처음에는 일본어나 중국어를 생각했는데, 이미 미국에서는 포화상태여서 차별화할 수가 없었죠. 향후 한국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한국어를 지정했어요. 또 한국어를 선택하면 한국 정부에서 보조금이 나와요. 사립학교는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초기에 마중물이 됐죠.“
– 중국어, 일본어와 비교해 한국어 교육은 어느 정도로 보급돼 있나요?
“미국에서 한국어수업을 수강하는 학생 수가 지난 5년 동안 540배 증가했어요. 하지만 전체 학생 수를 보면 중국어 5위, 일본어 8위에 이어 한국어는 11위예요. 최근 한국어 교육 붐이 많이 일어나긴 했지만, 중국어와 일본어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죠.
한국어는 한국 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어요. 중국어나 일본어는 자국 정부에서 지원하진 않아요. 일본어는 도요타 같은 일본 글로벌 기업들이 투자하고 있고, 워낙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예전부터 수요가 많았어요. 중국은 인구가 많으니까 커뮤니티에서 아예 화교 학교를 세워요. 중국은 문화를 보전하는 교육을 많이 해서 언어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요.“
– 한국어가 더 보급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인들이 조금 더 뭉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국인들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언어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한국인은 그런 느낌이 없어요. 한국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영어를 잘해서 주류사회로 나가는 뒷받침이 돼주려고 해요. 그래서 가정에서 한국어를 전혀 쓰지 않죠. 한국인 2세들은 한국어를 못 해요. 하지만 다른 나라 문화권 학생들은 자국 언어는 당연히 할 줄 알면서 영어도 해요. 국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부모님들이 조금 더 한국어에 자부심을 갖고, 집에서라도 최소한 한국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주 작은 장벽을 넘어서면
– 미국에서 처음 한국어교사를 할 당시를 생각하면 최근 한국어 붐이 격세지감일 것 같습니다.
“많이 변했죠. 2012년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학생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런 나라의 언어를 배우라고 하니 꺼리는 아이들도 있었죠. 그런데 이제는 학부모님들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두 말 정도는 최소한 알아요.
먼저 저한테 오셔서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 같은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봤다” “아이들하고 한국 음식점에 갔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해주시고, 아이들은 BTS나 블랙핑크를 많이 좋아해요. 저도 K팝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 드라마 클립을 따서 수업하면 정말 좋아해요.
이번에 코로나를 겪으면서 한국이 굉장히 깨끗하고, 방역도 잘하고, 체계적인 나라라는 이미지가 생겼어요. ‘Made in Korea’는 그냥 믿고 사용해요. 교사로서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죠(웃음).“
– 어떨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나요?
“아이들이 한국어를 잘할 때보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할 때, 한국에 애정을 가질 때요. 학교 졸업 후에도 계속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튜터링을 해주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런 아이들은 한국어를 정말 잘해요. 한국을 꼭 가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가서 아쉬워하는 학생들도 많아요. 그렇게 한국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끼죠.”
이용근 동문이 참석한 김정숙 여사와의 간담회 타이틀은 ‘아주 작은 장벽을 넘어서면’이었다. 2년 전 봉준호 감독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뒤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자막)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간담회에 함께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서로 다른 문화는 다가서지 않으면 높은 장벽이 되고, 서로가 다가서면 작은 장벽이 된다”고도 말했다.
“언어는 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잖아요.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은 어떤 나라이며,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왔고, 한국인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가르치게 돼요. 언어를 배우면서 그 문화나 사상을 이해하고 결국은 존중하게 되죠. 더 배우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고요. 그럴 때 문화의 장벽이 무너지는 걸 느껴요.”
– 앞으로의 꿈, 계획은요?
“거창하진 않아요. 지금처럼 하루하루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칠 거예요. 한국어를 배우고 사회에 나가서 많이 쓰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코로나가 끝나면 저희 학교에서 삼육대 학생들을 교생실습생으로 받을 계획이에요. 이 프로그램에도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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