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자녀의 성(性)교육, 이렇게 시작하세요
[안재순 상담심리학과 교수]
2016년, EBS(LIVE TALK)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성교육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조사했다. 1위는 지도하는 방법을 몰라서, 2위는 부끄럽고 쑥스러워서, 3위는 지식이 부족해서였다.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대부분의 부모는 아래의 경험에 동감할 것이다.
“초등학교 때 엄마와 아빠에게 아기는 어떻게 생겨?”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희 엄마는 ‘크면 다 알게 돼. 그딴 거 신경 쓰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나 해!’라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핀잔을 주었어요. 그냥 궁금해서 물었다가 무안하고 혼났던 기억만 남았죠. 그 이후에 다시는 부모님과 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어요.” 안타깝게도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성은 비밀스럽고 감춰야 하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각인시켰다.
“남자들은 짐승이고 도둑놈이야. 가까이하지 마라.”거나 “저거 봐.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면 불법 촬영을 당하는 거야”, “성기 만지지 마! 벌레 들어간다!”, “책임질 일 만들지 마라, 알겠어?”, “그러니까 늦게 다니면 안 돼.” 간혹 성에 대한 대화를 하시는 부모님들은 겁박하거나 금기 사항을 당부하므로 자녀들에게 성에 대한 두려움과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했다.
왜 가정에서 성교육을 해야 할까?
모든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남자와 여자로서 성(性)적인 존재가 된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을 탐색하고, 나와 다른 이성에 대한 동경과 궁금증이 넘쳐나는데 부모들은 아직 성교육을 할 준비가 안 된 경우가 많다. ‘어차피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될 텐데…’라며 성에 대해 무지한 것이 미덕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녀가 순수한 것은 좋으나 오염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자녀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성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부모들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대중매체는 ‘내 몸을 가지고 내가 성관계하는 건데 뭐가 문제지?’, ‘혼전순결, 아직도 그런 것을 지킨다고?’, ‘동성애는 아름다운 사랑이야’, ‘너와 내가 동의만 하면 언제든지 성을 즐길 수 있어’라는 왜곡된 성문화를 우리의 자녀에게 주입하고 있다. 이렇듯 문화라는 이름으로 성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들어올 때 자녀 스스로 필터링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역할은 부모의 몫이다.
성교육은 단순히 성행위에 국한되거나 성 지식을 전하는 것인가?
성교육은 생명 교육이자 자아 가치감 교육이다. 자녀를 임신했을 때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태교를 하면서 자녀를 상상하고 기대했던 이야기들, 출산의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자녀를 처음 만나 품에 안았을 때 힘들었던 모든 것을 다 잊고도 남을 환희와 희열에 찬 기쁨, 양육하면서 느꼈던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녹화해 둔 영상 혹은 육아 일기와 같은 글을 읽어 주며, 자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표현한다.
양육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마음 아팠던 일들,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가족이 함께 오래 참고 이해하며 사랑으로 극복한 이야기들을 자주 나누면 자녀는 ‘나는 사랑받는 존재구나!’라고 인식할 것이다.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성교육은 자녀가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또한 성교육은 사랑에 따른 책임 교육이다. 피임 교육만이 진정한 책임 교육이 될 수 없으며, 청소년들에게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성적 권리를 주는 것은 자칫 성적 문란을 조장할 수 있어 위험하다. 윤리가 빠진 청소년 성교육은 독이 들어 있는 사과를 청소년에게 주는 것과 같다.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즉 성교육은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이며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인성 교육이다.
가정에서 어떻게 성교육을 할까?
첫째, 성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자녀 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한다. “아들, 혹시 몽정했니?, 자위는 해봤어?”, “우리 딸, 이리 와봐. 성에 대해서 뭐 궁금한 거 없니?” 부모가 갑자기 이런 돌직구 질문을 하면 자녀는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 당황스럽거나 굉장히 민망할 것이다. 성은 민감한 주제라 어느 정도 관계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누기 어렵다. 평상시 자녀와 친밀해야 성적인 대화도 가능하다.
먼저 일상적인 대화부터 시작해 보자. ‘유치원 또는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친구들이 마음에 드는지, 자녀가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성교육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자. 이런 소소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친밀한 신뢰 관계를 형성한 후 자연스럽게 성에 관한 대화로 넘어간다. 자녀 성교육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자녀와 일상을 함께 나누고 대화하는 것이 성교육의 시작이다.
둘째, 단발적 특강이 아닌 매일의 삶 속에서 스며들 듯이 성교육을 한다. 우리 집 거실에서 혹은 함께 식사하는 식탁에서도 가능하다. 자녀와 함께 TV를 보다가 스킨십 장면이 나오면 부모는 “야, 눈 가려”라고 하거나 슬며시 채널을 돌리기도 한다. 이때 부모가 “저 장면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니?, 넌 어떤 장면에서 마음이 불편했어?”라고 대화할 수 있다.
또한 남녀 간에 스킨십에 대한 생각들, 남자와 여자의 심리적인 차이와 에티켓을 주제로 대화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경청한다. 미혼모나 동성애에 관한 내용이 나올 때 “너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고 부모의 생각도 들려준다. 마치 식사를 하면서 “이 음식 맛이 어때?”라고 편안하게 대화하듯이 말이다.
셋째, 신체 기관의 명칭을 정확하게 알려 준다. 자녀들과 성에 관한 대화를 할 경우 음경, 음순, 난소, 난자, 고환, 정자 등과 같이 정확한 용어를 사용한다. 다른 신체 부위의 이름은 정확하게 알려 주면서 생식기 이름은 왜 알려 주지 않을까?
막연하게 ‘소중한 곳’이라고만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원하지 않는 성폭력을 당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소중한 전부를 잃었다고 생각하며 깊은 우울에 빠지는 경우가 꽤 많다. 신체의 다른 부위를 다쳤을 때와 똑같이 생각할 수 있도록,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생식기의 정확한 이름을 알려 주자.
넷째, 자녀는 보통 10대가 되면 신체적, 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이 시기는 성호르몬의 왕성한 분비로 인해 2차 성징이 나타난다. 자녀가 월경, 사정 등의 변화를 경험하면 임신이 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성관계와 임신, 피임, 성병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음란물과 성폭력에 대한 주제도 함께 다루면 좋겠다.
사이버 활용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성범죄 행위의 증거물인 불법 촬영물을 클릭하는 행동은 성범죄의 공범이 될 뿐 아니라 피해자에게는 너무 큰 상처가 됨을 알려 준다.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쥐어 줄 때도 아래와 같이 약속을 할 수 있다.
“사이버상에서 누군가 너에게 말을 걸 때가 있을 거야. 어, 너 예쁘다. 멋있다. 너 우리 동네 살았니? 이런 말을 하며 너에게 접근을 할 경우 반드시 엄마, 아빠에게 말해 줘야 해. 혹 무슨 일이 있으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등을 돌려도 우린 무조건 네 편이야.” 당근마켓과 같은 중고 거래를 하거나 사이버상에서 채팅 한 사람과 만나러 나갈 경우 반드시 보호자가 동행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먼저 성교육을 하지 않으면 왜곡된 성적인 문화가 자녀 마음에 깃발을 꽂고 점령할 것이다. 친구나 미디어를 통해 왜곡된 성정보가 들어올 때 필터링할 수 있는 분별력이 강화될 수 있도록 자녀의 마음을 먼저 선점하라. 준비된 부모만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성적인 오염에서 우리의 자녀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다.
월간 <가정과 건강>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