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첫 걸음마

2020.12.28 조회수 3,584 커뮤니케이션팀

사랑스러운 가정 풍경, 애틋함과 감동으로 힐링하다
김성운 교수의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 고흐, ‘첫 걸음마’, 73×92㎝, Oil on canvas, 1890.

삶과 예술이 일치된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이 아리다.

1889년 화상을 하는 고흐 동생 테오는 몽마르트르에 있는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았다. 거기서 형이 요청한 밀레의 파스텔 작품인 ‘첫 걸음마’의 사진을 구해서 아를의 생레미 요양병원으로 보냈다. 밀레를 ‘회화의 아버지’로 여겼던 고흐는 그 사진을 보고 “숨 쉴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고 편지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밀레의 그 작품을 새로운 ‘고흐 버전’으로 다시 그린다. 감옥 같은 정신병원에서는 마음대로 그림 소재를 구할 수 없어 밀레의 그림들을 모사하는 일로 위로를 받았다. 이즈음 테오는 요한나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고흐는 온전하지 않은 정신이지만, 귀여운 조카를 생각하며 생애 가장 따뜻한 그림을 그렸다. 기실 그 조카의 탄생으로 테오는 지출이 많아졌고, 화상 형편이 안 좋아져 형에게 송금을 할 수가 없었다. 고흐는 궁핍을 벗어나려고 당시 비교적 잘 팔렸던 ‘가정적인 그림’을 그리기로 한 것이다.

▲ 밀레의 ‘첫 걸음마’

청출어람이랄까. 고흐의 ‘첫 걸음마’는 밀레의 ‘첫 걸음마’보다 더 유명하다. 형태를 재해석하고, 연두색, 하늘 색조로 색을 새롭게 ‘번역’하고, 자신의 독특한 구불구불한 붓 터치를 적용하면서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첫 걸음마’는 농부가 일을 하다 말고 귀여운 아기를 반기는 행복한 감동과 힐링의 광경이다. 엄마는 아기를 붙잡고 극진한 모정을 나타내고 있다. 따뜻한 햇볕을 받은 집, 울타리에 널린 빨래, 사랑스러운 아내 등은 고흐 자신은 불행하지만 역설적으로 갈증난 행복을 갈구하는 듯하다. 고흐는 좌절과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이 그림을 그리고 난 1년 후, 자살한다.

필자는 작년에 이 안타깝고 슬픈 현장을 모두가 보았다. 고흐, 테오가 잠시 살았던 몽마르트르의 아파트, 생 레미 요양병원, 그가 죽은 오베르, 형제가 뭍인 묘지 등에서 참기 어려운, 형언할 수 없는 슬픔으로 눈물을 흘렸던 생각이 난다. 필자는 고흐가 남긴 많은 대표작이 많지만 정신적 스승의 모작인 이 가정적인 그림이 최고의 힐링 작품이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이 그림을 조우하면 삶에 대한 의지, 애틋한 연민, 소박한 행복감이 몰려오면서 ‘울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글 김성운
화가, 삼육대학교 아트앤디자인학과(Art& Design) 교수, 디자인학 박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한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 단체전 230회, 파리 퐁데자르·라빌라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대한민국현대미술전 심사위원,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재림미술인협회장, 작품 소장 :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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