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요람

2021.04.26 조회수 2,365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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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붓 터치, 세밀한 감정…인간애로 힐링하다
김성운 교수의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 베르트 모리조, ‘요람’, 56×46cm, Oil on canvas, 1872, 오르세미술관 소장.

거친 인상파 그림은 남자 화가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남자들 틈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여류 화가가 나타났다.

베르트 모리조, 그녀는 로코코 미술의 거장 프라고나르의 증손녀로 부유한 집안의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마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 등 인상파 그룹에서 활발한 창작을 했다. 초창기 인상파 그림의 평가는 ‘거친 쓰레기’ 평가를 받았고 더구나 ‘여성이 인상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천하게 생각했다.

필자는 파리에서 연구 활동을 하면서 여러 미술관에서 모리조의 작품이 수없이 많음을 목격했는데 그중에서 그녀의 대표작 ‘요람’을 오르세에서 보고 발길을 멈췄다. 따스한 눈길의 어머니와 모기장 속에서 평화롭게 잠든 아기, 즉흥적으로 그린 인상파 특유의 자유로운 터치, 유화지만 수채화 같은 맑고 투명함, 군청과 핑크를 잘 버무린 단순한 색채 등은 모리조의 천재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모델은 모리조의 언니 에드마 모자(母子)를 그렸다. 그녀는 주로 일상과 가정적인 그림과 모성애를 다룬 작품을 많이 그렸다. 시인 발레리는 “그녀는 그림을 위해 살았고, 인생을 그림에 담았다”고 했다. ‘요람’은 전형적인 프랑스 중산층 침실의 분위기를 개성적인 구도와 부드러운 필치로 표현했다.

엄마 에드마는 눈을 내리깐 옆얼굴이고 아기 블랑슈는 눈을 감은, 잠자는 표정이지만 모자의 애틋한 정을 따뜻하게 잘 표현했다. 그녀는 “여자는 남자들보다 더 세밀한 환상과 목적을 지향하는 감정이 많아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풀밭 위의 점심’으로 유명한 마네와 교류하면서 더욱 모험적이고 혁신적인 그림을 그렸다. 아름다운 그녀는 마네의 그림에 단골 모델로 등장하며 스캔들도 있었다. 마네는 그녀를 동생 외젠 마네에게 소개해 결혼하게 한다. 외젠 마네가 일찍 죽고 2년 후, 모리조는 외동딸 줄리 마네의 독감을 보살피다 감염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남겨진 어린 고아 줄리는 화가 르누아르, 드가, 시인 말라르메가 챙긴다. 르누아르는 예쁜 줄리의 초상화를 두 번 그렸는데 사춘기 ‘줄리의 초상화’가 마르모탕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무용수의 그림으로 유명한 드가는 장성한 줄리의 결혼까지 주선한다. 줄리 마네는 자신을 보살펴 준 화가 아저씨들과 어머니 모리조의 예술 이야기 <인상주의,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을 써서 은혜에 보답한다.

필자는 자신들도 몹시 어려운 형편인데 고아가 된 동료 화가의 딸을 훈훈한 인정으로 보살펴 주는 것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모리조 부부가 살았고 생을 마감한 동네는 파리 외곽의 ‘부지발’인데, 필자가 한때 거주했던 루브시엔의 바로 옆 동네다.

글 김성운
화가, 삼육대학교 아트앤디자인학과(Art& Design) 교수, 디자인학 박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한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 단체전 230회, 파리 퐁데자르·라빌라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대한민국현대미술전 심사위원,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재림미술인협회장, 작품 소장 :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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