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성경이 있는 정물

2021.12.24 조회수 3,219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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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사부곡, 영적 정물로 힐링하다
김성운 교수의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 고흐, ‘성경이 있는 정물’, 65×78cm, Oil on canvas, 1885,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화가 중 고흐만큼 드라마틱한 인물도 없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목사를 배출한 명망가며 세 명의 삼촌과 동생은 잘나가는 화상이다. 고흐는 어릴 때 영어, 불어를 뗀 신동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가혹하여 결국 정신이상에 시달리게 된다.

어머니는 그에게 죽은 형의 이름 ‘빈센트’를 적용하여 평생 ‘죽음’을 의식하며 살게 했다. 경건한 목사 아버지는 고흐를 3대째 이어지는 목사로 교육시키길 원했다. 그러나 식구가 많아 제대로 된 신학 공부를 하지 못했고, 결국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

탄광에서 전도사로 설교를 시도하지만 신도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고흐는 그 탈출구로 가난하며 고통스러운 ‘화가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끝없이 자학한다. 사촌에게 청혼하고 아이가 둘 딸린 길거리 여자와 동거하는 등 말썽을 저지르는 가운데 화병이 난 부친이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성경이 있는 정물’은 초창기 작품으로 부친 사망 직후 아버지에게 바치는 그림이다. 고흐는 아버지의 손때 묻은 성경을 정성스럽게 그렸다. 촛불은 꺼져서 죽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구약의 이사야서가 펼쳐져 있다. 아마 고흐는 이사야서 1장의 “내가 아들들을 키웠더니 그들은 오히려 나를 거역하였다”라고 쓰인 구절을 의식한 것 같다. 그는 처절하게 회개하고 반성한다. 앞의 책은 에밀졸라가 쓴 소설 <생의 기쁨>이다. 책의 내용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반성경적이어서 권위적이고 경건한 아버지가 몹시 싫어했던 책이다.

‘성경이 있는 정물’은 갈색 계통의 단순한 구도지만 좌측 상단에서 빛이 쏟아지는 영적인 그림이다. 소설책에 고흐가 좋아하는 노랑색을 적용하여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의 붓질은 속사포처럼 매우 빠르고 단순하지만 책 모서리의 낡은 세월까지 표현했다.

그는 허름한 구두, 초라한 의자, 낡은 침대조차도 깊게 묵상하여 영적으로 표현했다. 고흐의 정물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교와 같다.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그림으로 보답한다. 그 신조는 “내 그림은 생명을 주고 새롭게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이며, 내가 세상에 태어난 보답으로 그림을 통해 기억에 남기고 싶다”는 말에 나타난다.

필자는 프랑스에 거주할 때 고흐와 함께한 기억이 남아 있다. 말하자면, 고흐가 자살했던 현장인 오베르의 밀밭에서 그의 화실까지 일부러 걸어가 보았다. 숲속을 지나는 꽤 먼 그 코스를 걸어가면서 사람을 지극히 사랑했고, 자신을 항상 죄인처럼 자학했던 심성 고운 고흐에게 한없는 동정을 느꼈다.

김성운
화가, 삼육대학교 아트앤디자인학과(Art& Design) 교수, 디자인학 박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한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 단체전 230회, 파리 퐁데자르·라빌라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대한민국현대미술전 심사위원,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재림미술인협회장, 작품 소장 :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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