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시인 외젠 보흐

2019.01.21 조회수 3,657 커뮤니케이션팀

김성운 교수의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붉은 포도밭’은 고흐가 남긴 유화 중 생전에 유일하게 판매된 작품이다.

당시 고흐의 그림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괴팍한 데다 타협하지 않는 고집불통인 그에게 눈길을 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벨기에에서 전시된 인상파 전람회에서 ‘붉은 포도밭’을 산 주인공은 시인 외젠 보흐의 누나 안나 보흐다. 그림 가격은 400프랑, 지금 돈으로 백만 원 조금 넘는 금액이다. 필자는 아를이라는 먼 곳에 가 있는 외로운 동생을 위해 초상화를 그려 준 고흐에게 연민과 고마움으로 ‘일부러 사 준 것’이라고 이해한다.

고흐는 벨기에 출신 화가이자 시인인 외젠 보흐를 그리기로 한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소명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고흐는 우정 어린 마음으로 시인 외젠 보흐를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낭만적이며 원대한 꿈을 가졌고, 독특한 생김새, 하얀 피부, 갈색머리, 꾀꼬리가 즐겁게 노래하듯 창작하는 외젠 보흐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마도 금수저 외젠 보흐가 가난한 고흐에게 잘해 주었을 것이라는 것은 능히 상상이 된다.

‘시인 외젠 보흐'(그림)는 고흐가 선호하는 옐로우 색과 울트라마린 색으로 이등분했다. ‘파란 하늘의 빛나는 별’은 고흐의 그림 소재로 많이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는 시인의 무한한 창조력과 신비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해 감정 이입을 했다. 이 그림은 고흐 특유의 꿈틀거리는 붓 터치가 덜 강조되어 있지만 밝고 강한 색상과 과감한 붓질은 누가 봐도 고흐 스타일이다. 영특하지만 굴곡진 예술가의 얼굴과 화려한 줄무늬 패턴의 넥타이가 상반된 메시지를 던져 준다.

▲ 고흐, 시인 외젠 보흐, 60.3X45.4cm, Oil on canvas, 1888, 오르세미술관

이 작품은 고흐가 매우 마음에 들어 하는 그림 중 하나다. 그의 작품 ‘노란집’, ‘침실’의 벽에도 등장한다. 고흐는 어디를 가든 자신의 방에 이 그림을 계속 걸어 놓고 보흐와 소통한다. 그 후 고흐는 비극적으로 사망하고, 그 충격으로 동생 테오도 형을 따라갔다. 황망한 테오 미망인 요한나는 남편의 유언대로 이 초상화를 외젠 보흐에게 준다. 자신의 초상화를 전달받은 보흐는 고흐를 평생 그리워하며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1941년, 그가 죽을 때에도 이 초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는다.

필자는 연구년 때 오르세미술관에 있는 사연 많은 이 그림을 몇 번 보러 간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 프랑스문화원에 있는 인상파 자료와 책을 읽고 직접 보러 가는 것에 무척 흥미를 느꼈다. 사진 자료에 의하면 외젠 보흐는 상당한 미남이다. 필자는 자신을 ‘못생기고 이상하게 그린’ 초상화를 평생 좋아하는 시인의 마음을 다시 읽어 본다.

그리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고흐를 도와주고, 이해하고, 기꺼이 대화 상대로 대접하는 외젠 보흐의 인성을 존경한다. 또 하나, 동생의 친구에게 은혜를 되갚아 준 사랑스러운 누이, 안나 보흐를 좋아한다. 이 남매는 유러피언 명품 그릇 브랜드인 ‘빌레로이앤보흐’를 창립한 장 프랑수아 보흐의 후손이다.


김성운
삼육대학교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홍익대학교, 국립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졸업. 프랑스 파리 유학(연구년) 개인전 20회(서울, 파리, 도쿄 등), 단체전 210여 회. 세계미술연맹, 한국문화마을협회 부이사장,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재림미술인협회 회장, 시섬문인협회 회장(역임)  파리 라빌라데자르갤러리, 퐁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작품 소장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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