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가족 모임

2019.09.23 조회수 4,149 커뮤니케이션팀
김성운 교수의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진한 우정, 선한 품성…애틋함으로 힐링하다

바지유는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화가다. 그는 생전에 가난한 화가들에게 물품과 화실을 제공하고 작품을 사는 등 개신교도로서 이타적인 선행을 많이 했다. 궁기가 흐르는 화가 친구들과의 식사 후에는 항상 바지유가 식사비를 댔다.

부모님은 바지유가 인술을 베푸는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4년 동안 공부하다가 의사 시험에 낙방한 다음 바로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에게 영향을 준 화가는 낭만주의자 들라크루아 그리고 인상파 친구 마네,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등이다.

바지유는 화우들과 퐁텐블로 숲 등으로 자주 사생을 나가서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그의 화실은 파리 인근의 베티놀스에 있었는데, 꽤 넓어 인상파 화가들의 아지트였다. 피사로, 세잔, 쿠르베도 자주 방문한다. 마음 넓은 바지유는 이 가난한 화가들에게 아낌없이 베푼다. 그래서 인상파를 초기에는 ‘베티놀스파’라고 하기도 했다.

▲ 장 프레데릭 바지유 Jean Frédéric Bazille, 가족 모임(Réunion de famille), 152 x 230cm, Oil on Canvas, 1867, 오르세 미술관.

‘가족 모임’은 인상파의 야외 인물화의 전형을 보여 주는 대작이다. 11명의 모델은 실제 가족과 친구들이다. 왼쪽에 착석한 부부는 그의 아버지, 어머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의사가 되지 못하고, 당시 무직에 가까운 인상파 화가가 된 아들의 모델이 된 심정이 오죽했을까? 그래서인지 얼굴이 밝지 않다. 장신의 바지유는 자신의 모습도 맨 좌측 구석에 소심하게 살짝 그려 넣었다.

큰 나무 그늘 아래 평화로운 가족들의 모임을 안정적인 구도와 과감한 붓질, 싱그러운 색감으로 풀어냈다. 녹색, 파란색 등 차가운 색 계열로 표현했지만 오히려 따뜻하다. 모델들은 거의 전면을 주시하지만 중앙의 3명은 다른 곳을 응시하면서 경직된 분위기를 해소시킨다. 우측 하단의 빈 공간은 나무 그림자와 모자 꽃바구니 등으로 화면의 균형을 맞추었다.

‘가족 모임’은 1869년에 제작한 바지유의 역작으로 우리의 국전격인 살롱전에 입선한다. 하지만 그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친한 친구 모네가 낙선했기 때문이다. 바지유는 “아마 심사위원들이 실수로 내 작품을 지목했을 거야.”라고 하면서 모네를 진심으로 위로한다.

착한 바지유는 이 그림을 그리고 난 다음 해 그의 조국을 위해 자진 입대한다. 그는 전투 중에도 지휘관이 부상당하자 대신 임무를 수행하다 적군의 총탄에 맞아 절명한다. 미혼의 29세 천재 화가 바지유는 아깝게 생을 마감했다. 오르세 미술관은 바지유의 애국심을 생각하여 이 작품을 오르세 미술관의 좋은 위치에 영구 전시하고 있다.

필자는 같은 화가로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바지유가 매우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그가 조금만 더 살았다면, 인상파의 그림이 꽃피는 것을 목격했을 것이다. 가난한 친구들의 작품이 잘 팔려 나가는 것을 보고 기뻐했을 것이다.

2015년 여름날, 필자는 애틋한 마음으로 바지유가 많은 그림을 그렸던 장소인 퐁텐블로 숲에 가 보았고, 그가 전사한 르와르 지역도 방문했다. 그때 끝없이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퐁텐블로 숲과 환상적인 풍경의 르와르강은 바지유의 선한 영혼과 오버랩 되어 진하게 다가왔다.

김성운
화가, 삼육대학교 아트앤디자인학과(Art& Design) 교수, 디자인학 박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한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 단체전 230회, 파리 퐁데자르·라빌라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대한민국현대미술전 심사위원,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재림미술인협회장, 작품 소장 :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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