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희귀·난치성질환 아동에게 음악으로 희망 전하는 김철호 교수

2018.05.23 조회수 2,978 홍보팀

 세계 최초 희귀·난치성질환 아동 합창단 ‘희망의소리 소년소녀합창단’ 지휘

[위드인뉴스 김도형]

5월 23일은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다. 희귀질환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높이고, 예방·치료 및 관리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정부가 법정기념일로 제정해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희귀·난치성질환은 2만 명 미만의 유병인구나 난치성을 띄고 있는 질환을 일컫는다. 현재의 의료기술로는 적절한 치료방법과 대체의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것으로 전 세계에 5000여종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50만 명의 환자가 110여종의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다른 질환에 비해 환자의 수가 훨씬 적기 때문에 원활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거나 일반의 인식도 훨씬 적어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훨씬 크다. 이런 가운데 벌써 10여 년째 묵묵히 희귀질환 환자의 동반자가 되어주는 의인이 있어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주인공은 김철호 교수(삼육대 음악학과).

그는 희귀·난치성 질환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지난 2007년 결성한 ‘희망의소리 소년소녀합창단’의 상임지휘자로 봉사하며,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김 교수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오랜 투병에 지친 어린이와 가족들이 기적의 하모니를 완성해 가고 있다.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위의 편견을 극복하고, 저마다의 노래와 몸짓으로 앙상블을 이뤄내고 있는 것.
 
지난 2월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홀에서 열린 정기연주회가 대표적 장면이다. 당시 쌀쌀한 날씨에도 300여 석의 객석은 일찌감치 꽉 들어찼다. 관객의 표정에는 흥분과 설렘, 약간의 걱정이 교차했다. 기다리던 막이 오르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곡이 끝날 때마다 천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와 갈채가 터져 나왔다. 간간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보였다.

김철호 교수가 이끄는 ‘희망의소리 소년소녀합창단’은 그동안 에버랜드 빅토리아극장에서의 창단 연주회를 시작으로 성남아트센터, 마포아트센터, 삼성전자 사옥 등에서 공연을 했다. 이번이 9번째 음악회였다. 20여명의 단원들은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감동의 시간을 꾸몄다.

이날도 ‘Wonderful KOREA’ ‘우리는 챔피언’ ‘아름다운 세상’ 등 10곡이 넘는 노래를 입술에 담아내며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특별한 화음을 선사했다. 간간이 우리 귀에 익숙한 영화 주제가나 유명 뮤지컬의 넘버를 섞어 풍성한 레퍼토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김철호 교수가 희귀·난치성질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2005년, 소리꾼 장사익 선생으로부터 임승준 군을 소개받으면서였다. 임 군은 누나 윤아 양과 함께 페닐케톤뇨증을 앓고 있었다. 선천적 대사 이상으로 특정 효소가 소화되지 않고, 체내에 쌓이면서 정신지체와 성장장애를 일으키는 이 병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보고될 만큼 희귀한 질환이었다. 남매의 성장이야기가 TV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한 그를 김 교수는 제자로 맞이했다. 노래는 좋아하지만,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던 임 군은 김 교수의 헌신적인 지도로 성악가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희귀·난치성질환이 뭔지 잘 몰랐어요. 막연히 ‘고치기 어려운 병’ 정도로만 생각했죠. 그런데 승준이를 만나면서 인식에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그들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즈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측으로부터 ‘환아들이 음악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없겠냐’는 문의가 왔다. 음악치료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김 교수는 그들이 한데 모여 호흡을 맞춰 노래하며 치유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희귀·난치성질환 아동으로 구성된 세계 최초의 합창단은 그렇게 꾸려졌다.
 
이때부터 저마다의 아픔을 딛고, 세상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희귀·난치성질환 아동과 김 교수의 동행은 시작됐다. 그는 매주 연습실을 찾았다. 아무리 바빠도 해외 일정이 아니라면 아이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미안하지만)때론 가족도 뒷전이었다. 그만큼 열과 성을 다했다.

음악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 ‘동행’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반응이 나타났다. 그 자신조차 예측하지 못했던 다양한 효과가 눈에 띄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하더라도 부끄러움을 넘어선 내면의 깊은 상처를 갖고 있던 아이들이 합창을 하며 달라졌다.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고, 피해의식에 젖어 있던 아이들이 어느덧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게 됐다.

사회와 동떨어져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던 아이들이 퍼포먼스를 준비하며 오롯이 자기를 표현해냈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것이 지휘자로서 김 교수가 단원들에게 노래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많았다. 처음에는 음악적 완성도에 치중하느라 갈등이 깊었다. 피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질환과 장애의 유형도 다양해 어떻게 조합을 이뤄야할지 난감했다.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예닐곱 살의 꼬마부터 대학생까지 연령차에서 오는 한계점도 분명했다. 그러나 마음과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니 힘들게만 보이던 조화가 퍼즐을 맞추듯 하나둘 맞춰졌다.
 
연주회의 목표가 관객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 건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단원들의 특성에 맞는 공연을 펼쳐낼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니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 단점이 개성으로 여겨졌다. 불협화음이 나더라도 인상이 찌푸려지지 않았다.
 
그건 마치 사투리를 쓰는 사람에게 표준어를 사용하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비록 장애와 희귀질환을 앓고 있지만, 그걸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드러내면서 자신이 가진 최선을 다해 밝은 에너지를 선사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의미 있다는 걸 뒤늦게 배웠다. 
 
김 교수는 이를 두고 “계속 진행하면서 나름 노하우가 생긴 것”이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이를 위해 무대 뒤에서 얼마나 고민하며 숨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됐다. 그런데도 그는 오히려 자신이 아이들에게 받은 게 더 많다고 미소 짓는다.

“사실 이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사람을 대하는 저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 비해 지금은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알고, 이해하려 애쓰죠.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저들과 같이 공감을 느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김철호 교수는 희귀·난치성질환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좀 더 성숙해지길 기대한다. 특히 기능의 정도를 일률적으로 따져 사람의 우열을 가리는 무한경쟁 체제에 변화가 있길 바란다. 조금은 느려도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걸어가는 통합이 이뤄지는 사회가 진정 행복한 공동체라고 믿는다. 미세먼지처럼 답답하고 각박한 세상이지만, 오늘도 그런 사회를 꿈꾸며 지휘봉을 잡는다.
 
그에게는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바람이 있다. ‘희망의소리 합창단’이 파리나무십자가합창단처럼 세계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이다. 희귀·난치성질환 아동으로 구성된 세계 최초의 합창단이 지구촌에 감동과 희망의 화음을 울려 퍼지게 할 날을 손꼽는다. 같은 처지의 환자들에게는 음악으로 용기를 선물하고, 가족에게는 사랑으로 위로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언뜻 앙상블을 이루기 어려운 조합처럼 보이지만, 마치 서로 다른 음이 만나 아름다운 오색 멜로디를 들려주듯 ‘희망의소리 합창단’은 가장 특색 있는 하모니로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김 교수가 내미는 봉사의 손길이야말로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만나 어울려 조화를 이루듯, 우리 사회에 공존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그것이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의 꿈을 응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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