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칼럼] 행복과 학구열

2019.06.10 조회수 6,104 커뮤니케이션팀

정성진 교수의 <행복과 성격 강점>

최근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장안에 큰 화제였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여러모로 반향을 일으켰는데, 특히 현시대의 교육 세태에 대한 메시지가 꽤나 묵직했다고 한다. 대학 입시에 사활을 거는 우리나라의 교육 풍토는 각종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의 교육이나 입시 제도를 도입해 보지만, 과열된 교육 시장으로 인해 또 다른 문제들이 생기고 만다.

이로 인해 부모나 교사도 어려움을 겪지만, 누구보다 학생들이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 인생을 배우고 행복을 연습해야 하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가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사력을 다해 경쟁을 뚫고 대학에만 들어가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 같지만, 실은 대학생이 된 다음에 진짜 문제들이 터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서울대학교 재학생의 절반가량이 우울 증상을 가지고 있다는 최근 뉴스가 이를 입증한다.

조사를 해 보면 선진국에서는 자신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공부한다고 대답하는 학생의 비율이 높은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공부한다고 답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부모를 위해 공부하는 태도는 어릴 때는 그럭저럭 유지되지만, 사춘기만 되어도 효과는 반감되고 만다. 부모의 교육열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자녀 스스로 배움을 즐기는 학구열을 갖추어야 4차 산업혁명으로 유발되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도 평생 배움을 사랑하며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학구열

‘학구열(學究熱, love of learning)’ 하면 소위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나 학자만 가지는 특성같이 느껴진다. 사전을 찾아봐도 “학문 연구에 대한 열의와 정열”이라고 정의되어 있어서 학구열이 ‘학문’에 국한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긍정심리학자들은 학구열을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것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그러한 지식과 기술을 숙달하면서 긍정 정서를 경험하는 성향”이라고 폭넓게 정의한다. 즉 학구열이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은 갈망과 배우면서 행복을 경험하는 특성인 것이다.

학구열 하면 떠오르는 한 분이 있다. 2014년 3월에 방영된 ‘다큐 3일’이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한 노인이다. ‘뚝섬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제목하에 한국방송통신대학에 다니는 분들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80세 할아버지의 모습이 유독 인상 깊었다. 이분은 퇴직을 한 이후 방송통신대학을 알게 되어 일본학과, 영문학과, 경영학과, 법학과를 차례대로 전공하였고 촬영 당시에는 경제학과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매일 오전 7시에 학교 도서관에 등교하여 오후 5시까지 꾸준히 공부하는데, 냉난방이 잘되는 곳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평생 배움을 사랑한다는 것이 바로 저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삼매경에 빠진 어린이, 열정을 다해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젊은이, 늦게 깨우친 한글로 시를 적는 노인을 보노라면 숭고함까지 느껴진다. 학구열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행복으로 인도하는 특성 중 하나인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학구열이 호기심과 관련이 크다고 말한다. 호기심이 먼저 생겨야 공부하게 되고,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면서 호기심이 충족되면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새롭고 다양한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호기심이라면, 그중 한 가지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것이 학구열이라고 할 수 있다. 호기심과 학구열의 선순환을 경험한 사람은 어려움과 난관이 있더라도 배움을 놓지 않으며 가시적인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배우려고 노력하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배움의 즐거움이야말로 어떤 이유가 필요 없으며 그 자체로 행복을 주는 덕목이라고 평가한다.

학구열은 어떤 동기로 학습에 임하느냐와 관련되어 있다. 학습 동기는 크게 두 가지다.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상같이 외적인 보상을 얻기 위해 행동할 때 작동하는 외재적 동기가 있고, 보상과 무관하게 배움 자체를 즐기는 내재적 동기가 있다. 외재적 동기보다는 내재적 동기를 가져야 장기적으로 배움을 추구하게 되고 배움을 통한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학구열을 좌우하고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내재적 동기는 어떻게 강화될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은 세 가지 요소가 내재적 동기를 이룬다고 말한다. 스스로 배움의 목표를 정하고 공부 방식을 정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되고, 학습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 주는 사람과의 관계성이 존재하며, 학습 성과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서 유능성을 가질 때 내재적 동기가 강해진다. 목표를 강요하거나 완성 시간을 정해 주거나 벌을 주거나 평가하겠다는 스트레스를 주면 내재적 동기는 약화되고 만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 있는 심리적 상태를 가리키는 몰입(flow)도 학구열과 깊은 관계가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서 현재 하는 것에 강렬하게 집중하는 상태가 몰입인데, 평가나 성과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즐기면서 할 때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적극적이고 내재적 동기가 강하며 끈기 있는 사람이 몰입을 잘한다. 또한 과제가 분명하고 단기적인 목표가 있어 자주 성취감을 맛볼 수 있고, 수행에 대해 즉각적인 피드백이 주어져서 보완할 점을 알게 되며, 개인의 기술 수준보다 약간 어려운 과제일 때 몰입이 촉진된다.

학구열을 통해 배움에 대한 긍정 정서를 갖게 되고, 배움의 과정 속에서 인내하며 자기 조절을 익히게 되며, 자율감과 도전을 즐기게 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유익을 경험하게 된다.

학구열 증진 방법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학구열은 공부에 관한 자율성을 보장받고, 믿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며, 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자신감을 경험할 때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된다. 학구열은 개인 특성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학구열을 높이고 싶다면 특정 분야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 영역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탐구 과제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며, 과제 수행에 도움이 되는 자신의 강점을 찾아내고 활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현재의 기분에 좌우되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 묶여 있지 않으며, 잘못된 믿음이나 고정관념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정의 양육 방식과 학교의 교육 방식도 학구열에 큰 영향을 끼친다. 부모와 교사의 따뜻한 애정과 지지, 흥미와 탐구를 유발하는 교수법, 흥미와 수준에 맞는 교육 내용, 자기 주도 학습 장려, 재능 발견의 기회 제공 등이 학구열 발달에 중요하다. 또한 교실에서 질문을 장려하고 학생들끼리 활발한 토의와 협동 학습을 하도록 지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 학구열을 실천하고 싶다면, 관심 있는 분야의 추천 도서를 읽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 분야의 지식을 꾸준히 탐색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는 것도 좋고, 관련된 지식이 모여 있는 박물관이나 전시장을 방문하거나 그러한 지식을 깊이 있게 다루는 학술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또한 이러한 관심사에 대해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과 동호회를 조직하는 것도 좋다.

‘배우다’라는 동사는 ‘배다’라는 동사에 사역 동사 어간 ‘우’가 결합된 것이다. ‘배다’에는 ‘알을 배다’나 ‘아이를 배다’처럼 생명을 품는다는 의미와 ‘물이 옷에 배다’처럼 스며든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즉 배움은 생명과 지식이 인격체 안에 잉태되고 스며드는 것이다. 공자가 논어(論語)에서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말했듯이, 생명과 지식을 품게 되는 배움을 평생 즐긴다면 우리의 인생 여정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성진 상담심리학과 교수]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ection=1&category=139&no=1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