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신년사 – “Soli Deo Gloria”

총장 신년사 – “Soli Deo Gloria”

2023.01.02 조회수 13,221 삼육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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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월, 삼육대학교 총장 신년사>

김일목

“Soli Deo Gloria”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 우리 대학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립니다. 올 한 해도 주님께서 대학과 구성원 각자의 가정과 삶을 은혜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잘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대학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잘 살 수 있습니까? 우리 대학이 어떻게 잘 될 수 있을까요? 올해로 개교 117주년을 맞는 삼육교육의 아름다운 전통과 유산을 어떻게 잘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요?

삼육대학교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삶과 사역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우리가 성령이 인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여러분이 잘 알고 실천하는 바와 같이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반응하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방해하는 큰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바쁨’이라는 것입니다. ‘바쁨’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를 보면 흥미롭습니다. 바쁨이라는 ‘hurry’는 ‘돌진’을 의미하는 ‘hurl’이나 ‘장애물 뛰어넘기’라는 ‘hurdle’, ‘야단법석’이라는 ‘hurly-burly’, 강력한 태풍을 가리키는 ‘허리케인’(hurricane) 같은 단어와 관련이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바쁨을 ‘질병’으로 규정합니다. 그들은 삶에서 바쁨을 가차 없이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칼 융이란 심리학자는 “바쁨은 악마의 것이 아니라 악마 자체다”라고 했습니다. 토머스 머튼이란 영성학자도 “‘현대 삶의 바쁨과 압박’은 ‘만연한 현대의 폭력’이다”라고 지적합니다.

왜 바쁨이 문제가 될까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쁨이 우리 삶과 사역의 소중한 것들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바쁨은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모든 관계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바쁘면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또한 바쁨은 기쁨과 감사, 그리고 건강을 파괴합니다. 특별히 삶을 성찰하는 지혜를 얻지 못하게 합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기다려야 하는데 바쁨은 인생의 지혜와 영성을 얻을 수 없게 만듭니다.

디지털 문명은 삶의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능력을 빼앗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현대인은 하루 평균 2,617번 핸드폰을 만진다고 합니다. 핸드폰으로 하루 평균 76번의 작업을 하며 하루 평균 2시간 반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현대인의 집중력이 해마다 떨어지고 있습니다. 2000년에는 주의 집중 시간이 12초였는데 지금은 8초로 떨어졌습니다. 금붕어의 주의 집중 시간은 9초입니다. 금붕어보다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 삼육교육의 본질-사랑

삼육교육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핵심 역시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바쁨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 바쁘면 하나님 나라의 사랑에서 멀어지게 될 뿐 아니라 삼육교육 이념을 올바로 구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바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바쁜 삶의 해법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해결책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가장 중요한 것을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슬로우 영성’(slowdown spirituality)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슬로우 영성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님에게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그분은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슬로우 영성의 지혜는 하나님과 함께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삶의 최우선에 두신 것입니다.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삶이 더 바빠지면 바빠질수록 더 자주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 고독과 침묵-검증된 영적 훈련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슬로우 영성을 본받을 수 있을까요? 기독교 역사를 통해 검증된 영적 훈련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독과 침묵입니다. 고독이란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 역사에서 예수의 길을 가르치는 영적 선생들은 하나같이 침묵과 고독을 가장 중요한 영적 훈련으로 꼽았습니다.

“고독 없이는 영적 삶을 사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따로 떼어 놓지 않는다면 영적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헨리 나우웬)

우리가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내지 않으면 영적인 삶은 시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 없이 연구와 강의에 몰두하면 그 사역이 지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습니다. 바쁘게 쫓기는 삶에는 불만족과 걱정, 분노와 우울이 따르게 됩니다.

반면 우리가 슬로우 영성을 실천하면 삶의 여유와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와 만족, 사랑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아침에 예수님처럼 ‘기도’와 말씀으로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시작하면 사랑과 기쁨과 평안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침묵이 없이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침묵은 성경 말씀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게 합니다. 침묵 속에서만 성경 말씀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침묵이 없으면 말씀이 내면의 길잡이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에 말씀과 기도의 고독과 침묵의 시간이 없으면 조그만 갈등에도 금방 격해지고 쓰라린 상처를 받게 됩니다. 대화로 문제를 푸는 일이 어려워집니다. 자의식에 찌들어 더불어 사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그리고 남을 내 기준에 따라 넘치거나 모자람을 따지는 소모적인 의심에 시달리게 됩니다.

아침에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은 후에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서로 의심하다가 지독히 해로운 결과를 당할 일이 없어집니다. 삶이 곧 기도가 됩니다. 많은 삶의 폭풍도 견딜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과 함께 하는 공간을 마련하면 삶의 행복과 효율이 증가하게 됩니다.

 

* 정체성 확인

예수님이 하나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삶의 최우선에 두신 이유는 그 시간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침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며, 아버지께서 나를 기뻐하신다”는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기도란 ‘나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아침마다 그 음성을 듣고 붙들지 않으면 세상으로 당당히 나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아침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야’라는 음성을 들으셨기에 거친 세상을 담대하게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 음성이 필요합니다. 조용한 기도 시간을 통해서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야, 아들이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입니다. 삶의 자유를 누리려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음성을 듣는 시간이 바로 기도 시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한 사람은 그 진리를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파커 파머가 지적한 바와 같이 공동체란 “가장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항상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 사람만 없으면 참 좋겠는데” 하는 그 사람이 늘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에게 서로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소명을 상기시켜 줍니다. 긍휼이란 아파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함께 아파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상에 낙오되어 가난과 외로움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도록 보냄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경쟁이 아니라 긍휼을 우리의 정체성으로 삼도록 합니다. 차별화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공유하는 존재가 되도록 초청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은 각자의 탁월성을 자랑하는 삶이 아니라 서로가 다 같은 인간으로서 형제 자매이며 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는 것이 우리 삶의 참된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보다 출중한 부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부분에서 찾아야 합니다. 나 자신도 깨어진 존재이며 불완전한 인간임을 인식하고 날마다 은혜로 치유 받아야 함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가 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그것을 삶의 정체성으로 삼으면 참된 치유와 기쁨, 행복과 평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건 성공이 아니라 품성의 열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을 평가 받는 기준은 생산성이 아니라 참된 열매입니다.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삶입니다. 이것이 없는 기도와 말씀은 외로움과 절망을 낳습니다. 반대로 기도와 말씀이 없이 어울리기만 하면 공허한 말과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올 한 해 예수님의 슬로우 영성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모두 주님의 품성을 닮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통해 날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경쟁이 아닌 긍휼로 우리의 제자들에게,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에게 그 열매를 나누게 되기를 바랍니다.

2023년 새해에는 삼육대학교 공동체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Soli Deo Gloria’를 이루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사역에 넘치는 은총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