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언론인터뷰] “조선족학교 문화유산은 소중한 우리 민족 유산”

2019.05.30 조회수 6,269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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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학과 안병삼 교수, <월간인물> 인터뷰

우리 안의 타지인 조선족. 영화나 뉴스 등 미디어는 조선족을 아직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다루고 우리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 조선족학교 학교문화를 오랫동안 연구한 안병삼 교수는 중국 동포에 애정이 크다. 조선족은 북한과의 관계가 점점 개선되고 통일이 되면 우리와 가장 가까운 동포가 될 것이다. “조선족은 보이지 않는 큰 힘이다.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어떤 이웃이 될지는 지금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고 말하는 안 교수를 만났다.

조선족학교 교가 연구를 계기로 학교문화 관심

삼육대학교 안병삼 교수는 ‘중국 조선족학교 학교문화 자원 발굴’ 분야에서 10여년 간 연구했다. 학교문화 연구라는 분야도 생소한데 중국 조선족학교의 문화라니, 궁금증이 커진다.

안 교수가 이 연구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교가다. 전남대 한상문화연구단에 근무하며 ‘근현대 한인디아스포라 지식자원 발굴과 DB구축’ 사업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중국 현지 조선족이 생산한 저서, 신문, 잡지 등 모든 인쇄물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학교의 규모나 졸업생 명단, 교과목 등을 정리해 놓은 것이 내용의 전부였다. 교가나 교육 이념, 교훈, 교표 등 학교의 정신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문건은 없었다.

‘어째서 소중한 학교의 정신에 관한 학교문화 자료들의 연구는 없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안 교수는 『중국조선족교육』이라는 잡지에서 일정 기간 조선족학교 교가를 소개한 글을 발견했다. 당시 중국 현지에서는 조선족 집거지가 사라지면서 그 속에서 역할을 하던 조선족학교가 급격하게 통폐합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교가 등의 자료들이 소실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교가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현실을 직접 목격한 안 교수는 “나만의 위기감과 책임감”을 느꼈다.

지금 교가를 수집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조선족학교 교가는 미궁의 연구과제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연구를 시작할 결심을 굳히고 한국연구재단에 연구프로젝트를 신청하였고 그 과제가 선정되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교가의 단편적인 수집보다는 조선족학교 전체의 ‘학교문화’ 유산자원을 발굴, 보존하는 작업도 시급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선족학교 문화 전체 영역으로 연구를 확대했다. 안 교수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작업을 하는 신선함이 좋았다.”라며 “내가 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에도 사라질 수 있다는 사명감이 나를 움직였다.”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연구의 필요성과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중국 조선족은 해외한민족 중 가장 수가 많고 민족학교인 조선족학교도 가장 많이 운영되고 있다. 2018년 기준 대한민국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해외동포는 약 750만명이다. 그 중 가장 많은 수의 한인이 거주하는 국가는 중국이며, 그들이 바로 중국의 200만 조선족이다. 한때 조선족학교는 1500곳 이상이었는데 현재는 200여 곳이 운영되고 있다. 인구감소로 이미 많은 조선족학교가 문을 닫았고, 퇴직교원의 사망으로 자료 유실에 대한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수준이라 학교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태였다.

안 교수는 조선족학교의 문화유산은 “우리 민족이 어려운 시기에 민족교육을 실시하며 만들어진 의미있는 결과물로써, 그 속에 담긴 여러가지 한민족문화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조선족학교 문화유산자원에 대한 수집과 보존은 국내 학교문화유산과의 비교를 통해 한민족학교간의 다양한 학교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다.

▲ 광흥조선족학교 방문조사 당시의 안병삼 교수

학교는 조선족 민족공동체의 구심점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기관이기만한 것은 아니다. 안 교수는 “학교는 조선족 민족공동체의 구심점으로써의 학교문화, 학생민족의식고취의 학교문화, 한족과 조선족간 문화교류 등 다양한 문화를 창조했기 때문에 이 연구를 바탕으로 자료의 영구보존, 학술적 활용체계를 구축할 것”이라며 “학교문화유산의 유실을 막고 중국 조선족학교에 대한 관심을 유도해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향후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연구 수행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진행했다. 1차년도 현지조사 지역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비롯해 장춘시, 길림시, 영길현, 매하구시, 장백조선족자치현, 통화시, 교하시, 류하현, 집안시 등 중국 길림성 지역이다.

직접적인 조사대상은 조선족 유치원을 비롯해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이며 폐교된 조선족학교의 졸업생, 연변대학조선족교육연구소, 민간소장가, 퇴직교원 등이다. 수집된 학교문화 유산자원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교가, 교훈, 교표, 학교 문건, 도서, 상장, 성적표, 학교 건물 및 학생활동사진, 졸업사진, 앨범, 졸업장, 교지, 학교인장, 배지 등이 있다.

2차년도 현지조사 지역은 하얼빈지구를 비롯해 목단강지구, 계서지구, 칠대하지구, 가목사시지구, 학강지구 등 중국 흑룡강성 지역이다. 현존하는 학교와 이미 폐교된 학교의 문화유산자원 모두 집중적으로 발굴했다.

3차년도 현지조사 지역은 심양지구를 비롯해 철령지구, 무순지구, 단동지구, 본계지구, 안산지구 등 중국 요녕성 지역이다. 현존하는 학교의 문화유산자원은 학교를 직접 방문해 수집했고, 조선족학교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 선생님들과의 면담도 진행하였다. 폐교된 학교의 문화유산 자원은 그 자료를 가지고 있는 신문사나 출판사 교육 자료실, 퇴직교원 혹은 개인 소장가를 통해 수집했다.

이어 안 교수는 연구의 세부 내용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이어갔다.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학교가 생산해 낸 각종 학교문화 유산자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시대적, 사회적 배경은 물론 자료에 대한 공시적, 통시적 연구방법으로 살펴봤다. 그동안 중국 조선족학교 학교문화에 대한 관심은 주로 교과과정이나 학교 규모 등의 교육사에만 집중되어 그 이외의 사료사적 가치가 높은 학교 정신 등의 자료를 소홀히 다뤘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학교가 생산해 낸 학교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또한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학교가 생산해 낸 학교문화 유산자원에 대한 여러 종류의 원문자료의 발굴과 수집을 통해 그 학교문화에 담긴 여러 가지 교육 문화 등을 역사적, 사회적, 현재적 시각에서 살폈다. 특히 최근 10년간 조선족들의 인구감소로 인해 급속도로 진행된 폐교 과정과 퇴직교원들의 사망으로 많은 학교문화 유산자원들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연구 자료도 부족하며 구체적인 사례 연구가 전무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된다.

자료 태부족에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

의욕적으로 연구를 시작했지만 자료 수집부터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폐교된 학교는 퇴직교원을 찾아 물어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현재 운영 중인 학교의 자료수집을 위해 학교를 찾아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왜 이런 자료를 수집하냐며 의심하고 문전박대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아직 학교문화 자료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학교 자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체계적인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많은 자료들이 폐지 취급을 받으며 버려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 조선족학교 운동장이 시간이 지나 옥수수 밭으로 바뀐 모습. 갈수록 조선족 학교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런 순간들을 맞이할 때면 안 교수의 마음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학교 교훈, 건학 이념, 교가, 교표 등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의 교원이 모른다고 답한다. 심지어는 교장선생님도 잘 모르고 있다. 교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교가를 만들어 한 학교에 교가가 3개나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기록을 하지 않아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또 자료 수집이 어려운 이유로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비협조적인 경우가 많았다. 이 외국인에게 정보를 줬을 때 혹시나 피해가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피하는 분들도 많으셨다.”라고 덧붙였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연구인만큼 활용방안은 다양하다. 중국 조선족학교 학교문화 유산자원 연구의 기초 자료로 제공한다. 20세기 전반기부터 현재까지의 중국 조선족학교가 생산해 낸 ‘학교문화’ 유산 자원을 연구함으로써 통시적인 조선족학교의 ‘학교문화’ 유산 자원 연구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수집된 자료의 공유를 통해 더 많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해외 한민족 ‘학교문화’ 유산 자원의 지적 집대성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해외 한민족 이주사를 정리하는 중요한 학문적 접근의 하나로 그동안 생산된 해외 한민족의 지식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학문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형태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이민 1세기’의 지적 자원을 집대성하는 작업이자 단절된 우리 역사의 공백을 복원하는 작업으로서 의의를 가진다.

한반도를 벗어난 지역을 연구함으로써 한민족의 한국학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민족 정보 자료 네트워크를 초중고 대학교에 연계하여 한민족의 정체성, 우수성 등 민족교육과 국가관을 고취할 수 있는 교육자료로 제공할 수 있다.

인문학의 위기 속 조선족 교육 뿌리찾고 기록하는 작업

안 교수는 2015년 ‘중국 길림성 조선족학교 교가와 그 연구’를 출판해 ‘2016 세종도서 학술부분’에 선정되었다. 올해는 ‘중국 흑룡강성 조선족학교 교가와 그 연구’, ‘중국 요녕성 조선족학교 교가와 그 연구’ 두 권의 저서 출판을 준비 중이다. “장기적으로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 민족공동체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목표이다.” 라고 했다.

현재는 한국연구재단 과제인 중국 조선족학교의 당안관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바쁜 연구 와중에도 현재는 한국연구재단 과제인 중국 조선족학교의 당안관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국동북아학회 이사, 재외한인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중문학회 운영이사를 맡고 있는 안 교수는 앞으로 “중국어를 학습한 학생들과 함께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사회에 봉사하고 이바지하는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고 싶다.”고 밝혔다.

인문학의 위기를 현장에서 몸으로 체감하는 안 교수는 교육현장에 대한 쓴 소리도 잊지 않았다. “교육부의 학교 평가에서 취업률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다 보니 인문학이 평가절하 되고 있다. 학과 자체가 없어진다. 지방대학교는 인문학과가 거의 사라지는 추세고 서울의 주요 대학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사회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한 사람의 시민으로 잘 자리 잡을 수 있게 교육하려면 취업이 잘 되는 학과뿐만 아니라 인문학 교육도 꼭 필요하다.”라며 “중국도 한창 경제성장에 집중할 때는 인문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 공자, 맹자의 고전 등이 다시 인기다. 고전이 활발히 출간되고 많은 사람이 읽는다. 우리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고립되고 소외감을 느끼며 발생하는 각종 사고는 인문학만이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문화시대에 포용할 줄 아는 능력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만 길러질 수 있다.”

중국 조선족들은 20세기 초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역사적 굴곡 속에서 중국이라는 타민족 국가에서 조선족학교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오면서 살아온 한민족이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잔혹한 탄압을 피해, 독립운동을 위해 이주한 한민족들이 대다수인 만큼 안 교수의 애정도 크다.

“국가가 힘이 없어 떠난 분들이기 때문에 국가가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라며 “조선족들을 재미교포, 재일교포와 달리 이중 잣대로 차별하는 습관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조금 더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바라봐 주시면 좋겠다. 이게 포용 국가 국민의 자세가 아닐까.”라며 독자들에게 당부의 말도 남겼다.

마지막으로 안 교수는 지난 10여년 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조선족학교 문화유산을 연구할 수 있어 “행운이었고 행복했다.”라고 얘기했다. 안 교수가 아니었다면 소중한 문화유산이 기록으로 남을 수 없었을 터. 조선족학교 문화유산 연구를 바탕으로 안 교수의 목표처럼 앞으로 10년은 조선족 문화공동체에 대한 연구 성과를 튼튼히 쌓아가길 기대한다.

안병삼 교수
중국 산동대학교 문학박사
(현) 삼육대학교 중국어학과 조교수
(전) 초당대학교 국제학과 조교수(2009.09-2019.02)
(전) 전남대학교 세계한상문화연구단 연구교수(2007.09-2009.08)
(전) 중국 산동대학교 외국인교수(2006.09-2007.08)
(현) 한국동북아학회 이사
(현) 재외한인학회 편집위원장
(현) 한국중문학회 운영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