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김성운의 예술과 과학] 문자, 장르를 넘나들다

2019.04.10 조회수 3,763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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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볼테르(Voltaire)는 “문자는 목소리의 그림”이라고 했다. 문자는 인간의 말이나 자연의 여러 가지 소리를 회화적으로 표현하려던 의도에서 탄생됐다. 문자의 형태와 소리는 예술가들의 구미를 당긴다. 한글, 알파벳, 한자, 숫자 등 문자에서 발현되는 독특한 모습과 문화적 감성은, 문자가 예술 작품의 ‘주요 소재’로 선택되는 이유다.

문자를 소재로 한 예술가론 미국의 팝아트티스트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조각으로 유명한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숫자의 화가’ 제스퍼 존스(Jasper Johns), 낙서 문자의 키스 헤링(Keith Haring), 검은 피카소라 불린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한국의 문자추상화가 남관, 고암 이응로 등 수없이 많다. 이들은 문자의 언어적 기능과 더불어 자간, 행간 속에 숨겨진 의미를 표현할 뿐 아니라 문자를 해체, 파서(破書)해 가독성과 상관없이 다양한 상상력과 해석을 유도하기도 한다.

디지털 인터넷 시대의 문자로 ‘하이퍼 텍스트(Hypertext)’가 있다. 하이퍼 텍스트는 1945년 바네버 부시(Vannevar Bush)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비연속적인 글쓰기, 즉 곳곳에서 갈라지며 독자들에게 선택을 허용하고 쌍방향적인 스크린 상에서 가장 잘 읽히는 문자를 의미한다. 하이퍼 텍스트는 눈에 보이지 않게 연결된 선(link)에 의해서 기존 텍스트의 차원을 넘어 읽기와 쓰기가 동시다발로 이뤄지는 특성을 가진다.

위 그림은 하이퍼텍스트가 움직이고 추락하는 영상과 실제 무용수의 춤이 어우러지는 상황을 묘사한다. 이 작품은 영상공학, 조명공학, 연극, 무용, 미술, 음악 등 장르를 초월해 시현된다. 이 문자 작품은 투명 무대에 공간이 생성되고 문자가 추락해 깨지는 상황을 관람자가 가상적으로 느끼며 비주얼 충격을 겪게 한다.

아래 그림은 비(雨)처럼 내리는 문자를 감상자가 움직이며 참여하는 설치 작품이다. 스크린에는 관람자의 얼굴이나 신체의 일부가 보여지고 관람자의 행동에 따라 문자가 잡히거나, 튀어 오르거나 하여 관람자에게 유희를 부여하고 직접 작품을 완성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하나의 시(詩)이자 동시에 비디오 프로그램으로서 관람자는 참여자, 사용자, 작가로서 전통적으로 부여된 임무를 유기적으로 해체한다. 이 움직이는 문자는 첨단 과학과 문학, 연극, 미술, 음악이 연동돼 고정되지 않는 의미를 상호작용한다. 이 ‘문자 쇼’는 관람자가 직접 연기하고 참여하는 형국으로 ‘낯선 상황’을 직접 접하게 한다.

스위스의 세계적 그래픽디자이너인 카를 게르스트너(Karl Gerstner)는 “말은 시간 안에서 진행되고 글은 공간 안에서 진행된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의 말과 글은 가상공간 안에서 시·공간을 넘나들며 진행되고 있다. 문자의 ‘경계넘기’는 제한된 장르와 시간과 공간을 거부하고 무한 소통, 무한 표현을 지향하고 있다.

예술과 과학의 융화·혼재에 의해 변화무쌍하게 진보하는 탈 장르, 탈 경계의 문자는 앞으로 어떻게, 어디로 변신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가 가지는 원래의 고전적·전통적 가치와 속성은 불변할 것이다.

김성운
화가,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디자인학 박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한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 단체전 230회, 파리 퐁데자르·라빌라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대한민국현대미술전 심사위원,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재림미술인협회장, 작품 소장 :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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