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뷰

[열정 36℃] 소방관이 된 시민영웅 “이젠 시민의 안전을 지킵니다”

2020.04.09 조회수 7,560 커뮤니케이션팀

[열정 36℃] (4) 남양주소방서 119구급대 소방사 김규형(간호학과 11학번) 동문

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열정 36℃>를 연재합니다. ’36℃, 뜨거운 열정으로 도전하는 삼육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젊은 동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2013년 11월 27일 오전 10시 경춘선 금곡역 승강장. 40대 남성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철로 아래로 추락했다. 열차가 플랫폼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는 일촉즉발 상황. 이때 20대 청년이 철로로 빠르게 몸을 던졌다.

이 청년은 추락한 남성을 안아 철길 옆 승강장 아래 공간으로 옮겼다. 다른 시민들은 달려오던 전동차를 향해 멈추라고 일제히 손을 흔들었다. 전동차는 두 사람이 있는 바로 그 앞에서 멈춰 섰다. 간호학과 재학생이던 이 청년은 추락한 남성이 머리를 다친 것을 보고 소독 등 응급처치까지 했다.

이 살신성인 미담의 주인공은 우리 대학 간호학과 김규형 동문(사건 당시 3학년)이다. 미담은 당시 여러 언론에 보도되며 많은 이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안겼다. S-OIL은 2014년 ‘올해의 시민영웅’으로 김 동문을 선정하고 표창장을 수여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그의 근황을 듣게 된 건 지난해 한 언론보도를 통해서였다.(관련기사▷‘철로 떨어진 시민 구한’ 김규형 동문, 소방관 특채 임용) 졸업 후 대학병원 간호사로 입사했다고 들었는데, 뜻밖에 소방관이 되어있었다. ‘시민영웅’과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관’의 이미지가 어렵지 않게 겹쳐졌다. 야간당직 근무를 막 마친 그를 남양주소방서에서 만났다.

 

금곡역 시민영웅

Q. 7년 전 그날 어떤 일이 있었나요.

“등교하려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말고사 기간이어서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방송이 나오는데, 어떤 40대 남성분이 열차를 타러 급히 뛰어오시더라고요. 숨이 가쁜지 호흡을 제대로 못 하셔서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앞으로 쓰러지더니 그대로 선로에 떨어졌어요. 순식간이었어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남성분은 선로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열차가 들어오는 게 보였어요. 급박한 순간이었고, 망설일 시간이 없었습니다. 무작정 철로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분을 끌어 플랫폼 밑에 있는 공간으로 피하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껴안았어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발버둥을 치더라고요. ‘괜찮다’라고 반복하며 안심시켰어요. 열차가 서서히 멈추고 기관사와 눈을 마주쳐 열차가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한 후 시민들과 함께 아저씨를 끌어올렸습니다.“

Q. 응급처치도 했는데요.

“아저씨의 머리가 찢어져서 피가 나고 있었어요. 역사에 있는 응급처치 키트로 지혈하고 상처 부위를 소독했어요. 이름, 나이, 사는 곳 등을 물어보면서 뇌 손상 여부도 확인했고요. 학교에서 배운 대로 했어요. 3학년이라 병원에 실습을 나갈 때여서 어렵지 않았죠.”

Q.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죠. 선로로 뛰어들면서 열차가 들어오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그런데 당시에는 내가 내려가면 저분을 빨리 옆으로 옮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위험하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Q.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였습니다. 평소 기질이나 성향이 이타적인 편인가요?

“그런 일이 처음이라 기질을 논하긴 힘들 것 같아요. 당시 젊은 남성이라면 누구나 뛰어들었을 거예요. 그때 주변에 계셨던 분들은 다 노인과 아주머니들이었거든요. 당연히 제가 하는 게 맞지 않았나 생각해요.”

Q.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말씀을 안 드려서 모르셨어요. 그러다 언론에 보도되면서 아시게 됐는데, 많이 혼났죠. 모든 일가친척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장손인데 무슨 생각으로 그랬냐고.(웃음) 물론 잘했다는 말씀은 꼭 해주셨는데,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말씀도 꼭 하셨어요.”

Q. 그런 일을 겪으면 생각이나 태도에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요.

“항상 사고를 의식해요. 사고는 내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죠.”

▲ 당시 채널A 뉴스 보도. 구조한 남성에게 응급치료까지 한 그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했다”고 말했다.

이직의 아이콘

김 동문은 우리 대학을 졸업한 후 전공을 살려 곧바로 간호사로 취직했다. 성적이 좋았고 면접도 잘 봐서 무리 없이 대학병원에 들어갔다. 주변에서 많은 박수와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벽에 부딪혔다. 간호사 일이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날의 사고처럼 뜻밖이었다. 대학병원부터 개인병원까지 2년 6개월 동안 3개의 직장을 거쳤다. 그즈음 친구들로부터 별명도 얻었다. ‘이직의 아이콘’.

Q. 뭐가 문제였나요?

“정말 간호사가 되고 싶어서 간호학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 간호사가 됐어요. 그런데 병원 취직 후 직접 경험한 간호사라는 직업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어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무척 보람 있었지만, 불규칙한 근무 일정과 사람 관계 등 여러 외부적인 요인으로 힘들었어요.”

Q. 많이들 힘든 직업이라고 하더군요.

“보람이나 장점도 많은 직업이에요. 힘든 건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개중에 잘하는 친구들은 또 정말 잘하고요. 그런 면에서 적성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나름 포부를 안고 첫 병원에 들어갔는데 그렇게 퇴사하면서 많이 위축됐어요. 그 상태에서 두 번째 직장에 들어갔고, 거기에서까지 나오게 되니 더 위축되더군요. 악순환이었어요. 마음고생을 정말 많이 했고요.”

Q. 그래서 소방관으로 진로를 바꾼 건가요?

“간호사 경력으로 소방관이 되는 길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같이 일하던 친구가 소방관 시험에 합격해서 이직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날부터 소방관이라는 직업과 시험 등을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돌파구 같았어요. 잊고 있던 7년 전 그 사건도 기억났고요.”

Q. 7년 전 사건요?

“사고 당시 지하철에서 응급처치하고 119구급대원 분들에게 인계를 드렸어요. 얼굴은 기억 안 나지만, 아마 지금 제 선임이셨을 거예요. 구급대원들이 전문적인 처치를 하는 걸 보면서, 나도 뿌듯한데 저분들은 얼마나 뿌듯할까 싶었어요. 그 경험이 계속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어요. 병원에서 환자를 케어하는 일은 2차적인 부분이에요. 현장에서 1차로 환자를 구하고 처치하고 싶었죠.”

Q. 실제 소방관 중에 간호사 출신이 많은가요?

“소방공무원은 세 종류로 나뉘어요. 화재진압, 구급, 구조대. 소방서 전체에서 비율은 모르겠지만, 제가 있는 구급대에서는 간호사가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요. 구급대장님도 간호사 출신이시고요.

Q. 특채로 임용됐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제도인가요?

“환자를 구급차로 이송하는 중에 응급처치를 하는데요. 이때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전문적인 처치가 필요한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런 처치를 하기 위해서는 병원 임상에서 일했던 경험과 스킬이 필수적이고요. 자격자나 경험자를 뽑아서 구급차에서 환자의 소생률을 높이자는 게 특채의 목적이에요. 실제 구급대는 대부분 특채로 선발하고 있고요. 응급구조사 1급, 간호사 면허 둘 중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서 병원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특채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겨요.”

Q. 어떤 시험을 보나요?

“필기시험은 국어, 영어, 소방학개론 총 3과목이에요. 국어, 영어는 수능보다 조금 낮은 난이도라 준비하는 데 어렵진 않았고, 소방학개론은 인터넷 강의를 보면서 준비했어요. 체력시험은 6종목이에요. 윗몸일으키기, 제자리멀리뛰기, 악력, 배근력, 오래달리기, 유연성 시험을 봐요. 면접은 단체면접과 개별면접이 있고, 적성검사와 신체검사도 있고요.”

▲ “환자를 이송하는 중에도 전문적인 처치가 굉장히 많이 이뤄집니다.” 1평 남짓한 이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시민의 생명을 구했다.

브레인 세이버

Q. 우리나라 소방관의 직업만족도가 최하위라고 합니다.

“소방관이 된 지 2년 정도 됐어요. 그동안 직장생활 한 것 중에 가장 오래 근무하고 있어요.(웃음) 근무하면서 출근하기 싫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어요. 언제나 출근하는 길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왜 그렇게 소방관의 직업만족도가 낮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Q. 어떤 부분이 가장 만족스럽나요?

“소방관은 생각하는 것보다 일반 시민들의 존경을 많이 받는 직업이에요. 대부분의 환자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사고 후에 찾아와서 손잡고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과일이나 과자도 많이 사 오세요. 당연히 받으면 안 돼서 그냥 돌려보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죠.”

Q.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시민이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어요. 아파트 경비원이셨는데, 24시간 당직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길이셨어요. 왼쪽 다리, 왼쪽 팔을 못 쓰고 말도 제대로 안 나왔고요. 그런 상태로 10분 거리의 집을 1시간이 되도록 못 찾고 헤매고 계셨어요. 걱정된 부인이 마중을 나갔다가 발견하고 119에 신고를 한 거였죠.

환자 상태를 보고 뇌혈관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일차적인 판단을 내렸어요. 구급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이동했고, 이동 중 의사와 계속 통화하면서 주사 등 여러 응급처치를 했어요.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았어요. 뇌출혈은 보통 예우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후유증이 남기 쉬운데 치료를 잘 받고 기적적으로 2주 만에 완치가 돼서 퇴원하셨어요.

그분이 제가 근무하는 시간에 과일을 들고 찾아오셨어요. 2주 전 마주했던 환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쾌된 모습이었죠. ‘덕분에 치료가 잘 돼서 퇴원했다. 부인과 여행을 간다. 가는 길에 너무 고마운 게 생각이 나서 들렀다’고 하셨어요. 정말 뿌듯하고 행복했죠.

그 일로 상도 받았어요. ‘브레인 세이버’라고 급성 뇌졸중 환자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평가하고, 이송해 후유증 최소화에 기여한 구급대원에게 소방청에서 주는 인증 칭호에요. 지난해 상이 처음 생겼고, 구급대원 중에서는 최초로 받았어요.“

Q. 천직이네요. 하지만 소방관이 맞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텐데.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요?

“현장 판단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순간순간 어떻게 대처할지 판단하는 건 경험에서 나오지만, 개개인의 타고난 능력 차도 있어요. 긴급한 상황에서 판단을 잘못하면 환자의 상태가 더 안 좋아지고, 동료와 자신까지 위험하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보통 흔히 말하는 빠릿빠릿한 사람이 하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느긋한 사람들은 조금 힘들 것 같아요.

또 아무래도 병원에서는 상처를 정돈된 상태에서 보게 돼요. 피도 옷에서 우선 다 제거되고 드레싱(환부소독)이 된 비교적 깨끗한 상태를 보게 되고요. 그런데 저희는 다친 상황을 바로 마주하기 때문에 잔인한 경우가 많아요. 저는 무감각해서 상관없는데, 무섭거나 힘들어하는 사람은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런 부분을 고려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Q. 적성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자면.

“학교에 되게 늦게 들어갔어요. 간호학과 입학했을 때 25살이었고 졸업은 29살에 했어요. 그리고 병원에 들어가서 2년 6개월을 방황했고요. 그렇게 갈피를 못 잡다가 결국 지금은 소방서에 와서 정착했어요. 굉장히 행복한 상태에요.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취직을 못 하거나,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계속 이직을 하거나, 꿈을 못 찾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계속 찾으려 하고 갈망하다 보면 언젠간 찾게 돼서 본인이 원하는, 딱 맞는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 멈추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 갈망하고 찾는걸.“

김 동문은 적지 않은 급여와 비교적 안정적인 스케줄, 여러 수당, 연금, 정년보장 같은 것들이 주는 푹신함과 안온함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는 “안정을 찾은 덕분에 최근에 결혼을 하게 됐다”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행복하게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일단 안전해야 해요. 물론 위험한 순간이 많지만, 내가 안전하게만 한다면 전혀 위험하지 않은 직업이에요. 반면 안전한 상황에서도 안전을 먼저 고려하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직업이고요. 앞으로도 항상 안전하게 일하면서 많은 시민을 구하고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싶습니다.”

정부는 지난 4월 1일 지방직 소방공무원 5만2516명 전원의 신분을 국가직으로 전환했다. 이를 계기로 소방관의 처우는 개선되고, 보다 안전한 근무 환경이 마련될 것이다. 모든 소방관이 계속 안전하기를,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기를, 그래서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그래야 우리 사회도 더 안전해질 테니까.

[시리즈 연재]
[열정 36℃] (1)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소년, 사람을 위한 기술을 꿈꾸다
[열정 36℃] (2) “나는 거리공연가…그리고 ‘직업인’ 입니다”
[열정 36℃] (3) “엄마”도 못하던 딸…4대보험 적용받는 직장인 됐습니다
[열정 36℃] (4) 소방관이 된 시민영웅 “이젠 시민의 안전을 지킵니다”
[열정 36℃] (5) 신학과 출신 독학파 테너, 팝페라 스타가 되다
[열정 36℃] (6)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 나는 매일 다른 인생을 산다
[열정 36℃] (7) 뉴욕의 한국어교사…K-컬처의 중심에 서다
[열정 36℃] (8) “내 경쟁력은 ‘소신’…길게 보고 한우물 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