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에세이] 중년의 아빠와 손

2024.03.07 조회수 895 커뮤니케이션팀

[이관호 스미스학부대학 연구원 / 철학자]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한데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1828~1910)의 명작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작가들은 대체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많은 공을 들이기 때문에 위 인용문은 톨스토이가 삶에서 얻은 통찰 가운데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불행한 가정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면 속을 터놓는 친한 친구가 가족 간의 고민을 꺼낼 때는 나름 열심히 들었는데도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그만큼 가족은 아주 특수한 관계로 그 안의 갈등이나 고민거리들은 그 구성원이 아니면 접근하기 힘든 내밀한 문제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한 모습들이어서 공감하기 어렵지 않다. 그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해 보자. 어떤 행복한 가족이라도 그 장면을 클로즈업하면 가족과 맞잡은 ‘손’이 보이지 않을까?

중년의 아버지

어린 시절 아버지는 엄하신 편이었고 그 사랑이 은근하고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같아서 살갑게 표출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손을 잡아본 장면이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지는 않다.

그런데 꽤 오래전, 막 서른이 된 어느 날 방 정리를 하다가 앨범에서 한 장의 증거물을 발견했다. 아마도 어머니가 찍으셨을 사진에는 예닐곱 정도의 내가 집 앞에서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누가 먼저 잡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바깥이니까 어린 나로서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아빠의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꺼내서 당시 몰던 차에 넣어 두고 다녔다. 이유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앨범의 그 많은 사진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차를 바꾸는 과정에서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싶어 몇 번을 더 찾다가 결국 포기했다.

기억하는 한 처음 아버지의 손을 잡은 건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병상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요즘 식사를 하지 못하신다는 전화를 받았고 병원의 검진 결과 의사로부터 귀가 멍해지고 가슴이 내려앉는 정보 몇 가지를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평생 아프거나 불편한 것을 내색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그날도 표정의 변화가 없으셨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셨을 때 나는 ‘드디어’ 그분의 손을 잡아드렸고 ‘살가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굳이 아들에게 말하지 않으셨던 지난 일들을 들으면서 나는 몇 가지 퍼즐 조각들을 얻었고 아버지의 삶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또 가족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 하늘에서 만나고 싶은 분들의 이야기까지 대화의 주제도 경계가 없었다. 한 달 후 떠나시려는 순간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내게 맞닿은 그 손은 마지막으로 꿈틀거렸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 것 같았다.

진정한 사랑은 말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는 한 번도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지만(물론 내 기억에) 그럼에도 나는 그것의 무한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무한함이 어떤 유산의 유한함보다 아직도 내게는 가장 소중한 것으로 남아 있다.

중년의 나

이제 또 다른 손에 대한 이야기다. 내게는 이제 막 열 살을 넘긴 아들이 한 명 있다. 주변 친구들에 비해 결혼이 늦었고 아이가 생긴 건 또 그로부터 상당 기간 후여서 ‘중년의 아빠’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치러야 할 의무가 면제될 리는 없다. 주말 중 하루는 내 일을 반납하고 온전히 아이와 함께 무엇을 해야 한다. 여느 젊은 아빠들처럼 서해 바다에 가면 갯벌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혀서 아이가 지목한 곳을 삽으로 파야 하고, 동해 바다에 가면 아이와 파도놀이를 하면서 역시 종일 얼굴과 어깨를 태워야 한다.

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스스로에게 희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의무를 이행하는 아빠가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이와 함께 즐기는 수밖에 없다는 걸 일찍이 터득했다. 그런 와중에도 사랑의 표현에 인색한 좋지 않은 태도는 유전이 되었는지 나 또한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고 먼저 살갑게 다가가서 손을 잡는 일도 드물다.

그런데 손과 관련해서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발견했던 순간이 있었다. 아들이 일곱 살이었던 해의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당시 공룡에 빠져 있던 아이는 나와 수시로 공룡 배틀을 하던 적대적 관계였지 손을 잡고 다니는 관계는 아니었다. 그날은 엄마 없이 둘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내 걸음이 더 빠르다 보니 혼자 너무 앞서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뒤에서 내 손을 잡는 감촉이 느껴졌다.

조금은 멋쩍고 쑥스러운 느낌이었다. 그간 얼마나 아이 손을 잡지 않았으면 그랬을까. 불현듯 젊은 날 차에 놓고 다니다 잃어버렸던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수십 년 전 어머니의 사진기가 포착한 그 순간의 전후 정황이 그려졌다.

연초에는 역시 아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주말에 스케이트장에 다녔다. 도대체 그전 언제 탔었는지 가물가물할 만큼 추억의 공간이지만 넘어져 보니 추억이 소환되기보다 뼈마디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아들 녀석이 없었다면 이 나이에 내가 어떻게 이런 경험을 하고 있겠는가. 어쨌든 빙상에서 아슬아슬하고도 위태로운 두 사람은 함께 타고 넘어지면서 충분히 손을 잡았다.

몇 해 지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아빠의 손을 피할 것이 분명하니 그전에 좀 더 잡아 두어야겠다. 러시아 대문호의 글처럼 모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비슷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는 행복도 그러할 것이다.

월간 <가정과 건강>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