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언론 인터뷰] 최선주 교수가 말하는 또 다른 ‘희망의 소리’

2024.03.29 조회수 2,379 커뮤니케이션팀

희귀질환자 ‘희망의소리 합창단’ 음악코치
음악학과 최선주 교수
월간 <시조> 3월호

지난해 12월 20일 한국방송회관 코바코홀. 말끔하게 단복을 차려입은 20여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무대에 섰다. 근디스트로피, 담도폐쇄증, 22번염색체미세결실증후군, 프래더윌리증후군 등 희귀·난치성질환을 가진 환아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로 구성한 ‘희망의소리합창단’이다.

<가족; 우린 서로에게>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 행사에서 단원들은 ‘웃어요 치즈’ ‘행복넝쿨’ ‘말의 향기’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감동의 화음을 선사했다. 가슴 끝에 닿는 울림 깊은 노래에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이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병을 앓으면서도 꿋꿋하게 일어서 무대의 주인공이 된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떨지 어렴풋하게 가늠됐다.

단원들은 이 같은 연주회 참여를 통해 자존감과 사회성을 함양한다. 심리적 안정을 찾거나 가족관계가 더욱 긍정적으로 회복되기도 한다.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 이를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막이 내리고, 환호와 박수를 쏟아냈던 관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조명 꺼진 스테이지에서 남몰래 감정을 추스르며 눈시울을 붉힌 사람이 있다. 바로 이 단체의 음악코치로 봉사하는 최선주 교수(소프라노 / 삼육대 음악학과)다. 그는 2014년부터 ‘희망의소리합창단’과 동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 사회 희귀질환 극복에 이바지한 공로로 질병관리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관련기사▷최선주 교수, 질병관리청장 표창…희귀난치성 환아 음악코치)

최 교수가 이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동료 음악인의 요청으로 재능기부 공연에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를 후원하는 여러 사람을 만나 자신도 자원봉사 대열에 들어서게 됐다. 2013년 삼성그룹 초청 공연 이후로는 아예 음악코치로 합류하며 꾸준히 선한 영향력을 나누고 있다.

언뜻 희귀·난치질환 아동을 음악으로 지도하는 일이 그리 쉬워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떤 점이 제일 어렵냐고 물으니 그는 그런 ‘뻔한’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많은 분이 그렇게 묻는데, 사실 그다지 힘든 점은 없어요. 단원들이 거부감 없이 친밀하게 잘 따라주기 때문에 생각만큼 어렵지 않아요. 만약 성격상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들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뛰고, 놀고, 장난치는 것을 즐깁니다.”

희귀·난치질환자를 돕는 활동은 다른 봉사에 비해 어려울 것이라는 기자의 ‘무지한’ 편견과 선입견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는 곧 희귀·난치질환자를 대하고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이어졌다. 그간 가슴에 담담하게 담아왔던 진정성이 오롯이 전해져왔다.

“아직도 많은 분이 희귀·난치질환이 무엇인지,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혹은 모든 질환이 유전인 것처럼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죠. 환자 수도 적다 보니 치료제 개발이나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지 못하고, 설혹 약이 있다 하더라도 너무 비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채 중도 포기하는 일도 잦아요.”

실제로 현장에서는 의사들도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이른바 ‘진단 방랑’을 경험하는 환자와 가족이 적잖다. 어렵사리 병명을 확인하더라도 힘겹고 외로운 투병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환자와 가족이 떠안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 최 교수의 의견이다. 전 생애 동안 증상이 더욱 악화하지 않도록 치료를 지속하면서 몸은 물론, 마음까지 아프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더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 (오른쪽부터) 최선주 교수, 질병관리청 김현준 차장이 표창장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희귀·난치질환은 대부분 유전적 요인이거나 선천적이라고 여기지만, 성인이 되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일도 많다고. 누구나 잠재적 희귀·난치질환자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노래로 희망을 전하는 단원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의 시선이 희귀·난치질환자와 가족들로 향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진솔한 바람이다.

최선주 교수가 주변으로부터 칭송받는 까닭은 단순히 노래를 잘 가르치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환아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자활할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지도한다. 특히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억눌려 있던 내면의 감정을 승화하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완성하며,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전인적 존재로 여길 수 있도록 이끈다. 그가 합창단을 지휘하며 가장 신경 쓰는 점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우리 사회는 ‘환자’라고 하면 ‘불쌍하다’ ‘안타깝다’라는 동정심이 앞서는 것 같다.”면서 “물론 동정도 또 하나의 관심이자 사랑의 다른 표현이 될 수 있지만, 희귀·난치질환을 앓는다고 노래를 할 수 없는 것도, 생각이나 감정을 다루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번 음악회도 그랬다. 항상 주변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던 환아들이 ‘사랑하는 가족의 지친 마음을 보듬고 응원해주는 주체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했고, 그들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멜로디를 타고 관객들에게 성공적으로 다가갔다. 설명을 듣고 보니 ‘아빠 힘내세요’ ‘엄마의 향기’ ‘햇살 같은 나의 부모님’ 등 그날의 노래가 더 생생하게 반추됐다. 객석에 흘렀던 눈물이 그토록 뜨거웠던 이유를 한 뼘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따뜻한 관심과 동정은 고맙지만, 환아들이 질환을 갖고 있다 해서 언제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존재가 아닌,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인격체로 자라길 바라는 최 교수의 심정이 읽혔다. 그 자신 역시 환아 한 명, 한 명이 주체적 삶을 살도록 격려하며 노래로 기쁨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 교수는 요즘 들어 아이들을 가르치다 자주 눈물을 쏟는다며 시선을 잠시 창밖으로 돌렸다. 웬일인지 해가 지날수록 울고 싶은 일이 많아지는 탓이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어딘가에서 여러 문제로 인생의 힘든 시기를 지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서로 다른 질병이나 남이 모르는 아픔을 갖고 있는 것의 차이일 뿐, 누구나 사는 것은 다 비슷하다고 여겨져요. 그것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척 큰 용기가 필요하고, 어느 부분은 위로를 받아야 하죠. 주위를 둘러보세요. 가족이나 친구, 동료 등 나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반드시 있을 겁니다. 세상은 비록 거칠고 척박하지만, 용기를 내어 살았으면 좋겠어요. 겨우내 차갑게 얼었던 대지를 뚫고 새로이 돋아나는 저 새싹처럼요.”

그는 한 걸음 더 들어갔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거예요. 혹 삶의 무게에 버거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이 주변에 없는지 둘러봤으면 좋겠네요. 누구나 남들은 알지 못하는 아픔과 상처를 겪으며 살아가건만, 마음 놓고 털어놓거나 도움을 호소할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는지 돌아보고 꼭 안아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랑을 가슴에 키워갔으면 좋겠어요.”

희귀·난치성질환 환아들과 목소리를 모아 ‘희망의 소리’를 빚어가는 최선주 교수가 전하는 또 다른 ‘희망의 소리’였다. 아! 그러고 보니 계절은 벌써 봄이구나.

월간 <시조>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