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시론] 호모 에티쿠스의 고뇌

2024.06.27 조회수 628 커뮤니케이션팀

[이국헌 신학과 교수]

지난해 등장한 챗GPT로 인해 인류 사회는 대변곡점에 접어들었다. 70여 년 전에 존 폰 노이만이 언급한 기술적 특이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AI의 발달이 가속화되면서 인간의 자연지능이 인공지능에 추월당하게 될 시점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한다.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의 예측이 맞다면, 그 시점은 2045년이 될 것이다. 유엔 미래보고서에도 나타나고 있는 이 시점은 이제 20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 변혁의 시기에 대학 공동체는 무엇을 염려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생각할수록 복잡하고 난해한 과제다.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고려해 볼 때 대학과 지식인의 고뇌는 더 깊어진다. 교육 현장에서 다가올 미래 사회에 부합하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데, 그것을 통찰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지식인에게조차 전혀 새로운 데이터가 쌓이고 생소한 알고리즘이 고도화되면서 기존의 지적 능력으로는 그 데이터를 처리하기가 어렵다. 유발 하라리가 예언한 것처럼 소수의 엘리트 집단인 호모 데우스를 제외하고는 그 사회적 복잡계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복잡하면 단순화시키라는 윌리엄 오컴의 면도날 원리가 필요해 보인다. 중세 실념론과도 같은 불필요한 형이상학적 담론을 제거하고 핵심 논증에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오컴의 면도날로 기술인본주의 사회의 논리비약적 실재들을 도려내고 한 가지를 남겨둔다면, 거기에 호모 에티쿠스가 있을 것이다. 윤리적 인간이야말로 미래 사회에서 인류가 호모 유스리스가 되지 않을 유일한 존재론일 것이다. 하라리는 궁극적인 미래의 인류를 호모 유스리스로 예측했지만, 그건 존재론적 결여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고도화로 만물인터넷이 등장할지라도 호모 에티쿠스가 존재하는 한 인류의 미래는 그의 예측처럼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대학과 지식인에게 맡겨진 책임은 윤리적 인간, 윤리적 사회, 윤리적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윤리 역량을 갖춘 호모 에티쿠스가 양성되면 윤리적 사회, 즉 문화와 기술을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문화와 기술이 발전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윤리적 사회는 윤리적 미래를 전망하게 해 줄 것이다. 호모 에티쿠스가 꿈꾸는 미래에서, 만물인터넷은 인간을 지배하는 수단이기보다는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는 장이 돼야 하며, 호모 데우스가 개발한 알고리즘은 도구적이라기보다는 윤리적이어야 하고, 도래할 종교는 데이터교가 아니라 메시아교가 되어야 한다. 호모 에티쿠스는 그것을 꿈꾸고 그것을 희망한다.

시대의 변곡점에서 윤리적 미래를 희망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시대의 지식인이 호모 에티쿠스로 거듭나는 것이다. 대학의 지식인 사회에서 윤리 역량이 무너지면 사회와 미래는 암울하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윤리적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 미래를 위한 교육은 실패한 것이다. 교수가 윤리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학생의 윤리 역량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호모 에티쿠스의 고뇌는 대학 사회가 곱씹어야 할 사안이다.

학생들의 기말고사를 채점하다가 충격을 받았다. 온라인 오픈북 시험이었는데, 두 학생의 답안이 99% 똑같았다. 두 학생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었는데, 표절을 부인했다. 표절도 문제지만, 해명의 기회마저 부정직하게 대응하는 것이 더 문제였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윤리 역량을 키워주지 못한 것을 스스로 자책하면서, 그들에게는 재시험의 기회를 줬다. 학생들이 정직함을 배울 기회가 됐기를 바란다. 인공지능이 고도화되면 이런 윤리 문제는 더 심화될 것이다. 각 대학과 지식인이 윤리 역량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64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