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시론] 초갈등사회에서 고등교육의 역할과 책무

2022.12.26 조회수 1,967 커뮤니케이션팀

[이국헌 삼육대 신학과 교수]

지난해 글로벌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가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2개 항목 중 7개 영역에서 갈등지수가 1위로 나타났다. 특히 세대 갈등과 빈부 갈등 등에서 압도적인 갈등지수를 보여주고 있다. 요즘도 우리 사회는 정치이념 갈등, 노사 갈등 등 공공 영역에서의 갈등 상황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여러 지표들을 감안해 한국 사회는 초갈등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초갈등사회 현상을 바라보면서 고등교육의 역할과 책무를 생각해보게 된다. 대학은 큰 학문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첨단 학문을 발전시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대학의 책무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조화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고등교육이 집중해야 할 과업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변으로 소통 역량의 강화를 제안하고자 한다.

소통 역량은 미래 인재가 함양해야 할 핵심 역량 중 하나로 언급되곤 한다. 몇 년 전 세계경제포럼은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16가지 능력을 제안했는데 그 중 핵심 역량 요소에 비판적 사고, 문제해결 능력, 의사소통, 협업 능력 등을 포함시켰다. 이 요소들 중에서 의사소통이 주요 핵심 역량 중 하나로 제안되고 있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하버마스가 정보화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로 의사소통 능력을 언급한 것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만큼, 오늘날 소통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특별히 초갈등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에서 소통 역량을 함양한 인재를 배출하는 것은 고등교육의 주요 과제가 됐다.

이런 사회 현실에 대한 분석에 기초해 각 대학들은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을 구축했고 의사소통을 그 핵심역량 중 하나로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의사소통은 ‘자기 이해와 타자 이해를 기반으로 한 원만한 관계 형성 및 표현 능력’으로 정의된다. 소통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매우 중요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의사소통 역량은 △자기표현 능력 △설득력 △언어이해 능력 등을 말하는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러나 소통 역량은 그러한 자기 이해는 물론이고 타자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진정한 소통 역량은 합리적인 자기표현 능력만으로는 함양될 수 없다. 그 역량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신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수반될 때 비로소 조화롭게 계발될 수 있다.

따라서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 중 하나인 의사소통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학은 학제 간 통섭을 지향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요즘 대학의 상황을 보면 4차 산업혁명의 대세로 인해 학문의 장이 더욱 더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될 경우에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주목한 언어 게임이 심화돼 학문 간 소통은 더욱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언어 게임의 장벽을 줄이기 위해서는 학제 간 언어를 공유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공 교육 못지않게 교양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교양 교육을 통해 다양한 학문적 소양을 공유하게 되면 다른 분야의 언어들을 이해할 수 있고, 타자 이해와 공감 능력이 배양될 것이다. 아울러 미래 인재의 조건인 소통 역량이 강화될 것이다. 이것이 초갈등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이 지향해야 할 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점점 고도화되고 있는 기술인본주의 시대에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조화와 공감의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대학은 학생들의 의사소통 역량을 키우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혁신적 교양교육을 통해 학제 간 통섭을 이끌어내는 교육이 이뤄진다면 공감과 조화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기대가 실현될 수 있도록 소통 역량을 강화하는 고등교육의 책무가 강화돼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38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