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시론] 집으로 가자

2023.08.25 조회수 1,401 커뮤니케이션팀

[송창호 신학대학장]

‘집으로, 집으로’

해가 뉘엿뉘엿 불암산으로 넘어가고 있다. 불암산 정상이 정면으로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오늘의 임무를 마친 불그스름한 해를 보며 알 수 없는 만족과 평안을 느낀다. 왠지 나도 오늘 하루 주어진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처럼. 그러나 그 감흥도 잠시, 은은한 햇볕을 가리는 녹색 버스들과 각양각색의 승용차들이 달리는 모습이 순간의 평안을 깨 버린다.

붉은 태양에 고정되었던 내 시선은 길을 달리는 차들로 끌려간다. 차선을 채운 붉은 불빛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들의 목적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을까? 아마도 그들도 집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퇴근 시간이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일 아침이면 다시 출발하여 이 동일한 길로 돌아올 것인데, 집에는 무엇이 있길래, 누가 있길래 어둠이 밀려오는 시간, 복잡한 길을 거슬러 집으로 돌아가는 걸까?

‘영끌족, 빚투족’

‘영끌족’은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과도한 대출로 집을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주로 2030세대의 젊은 사람들이 주요 구성원이다. 집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서 지금 집을 구입하지 않으면 미래에는 더 비싸게 구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영끌족이 되어 가고 있다. ‘빚투족’이라는 비슷한 표현도 있는데 이들의 행동을 ‘묻지 마 투자’라는 용어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집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 주는 현상이다.

실제로 거주하기 위해 집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집을 부의 표식으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갭투자’라고 불리는 방식을 통해 수백 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집을 주거 공간뿐 아니라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부동산을 통해 수입을 올리는 것이 많은 사람의 바람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표현이 있을까.

‘집이 되려면’

올해 초,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이미 아버지, 장인, 장모님은 예전에 우리 곁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남아 계시다가 결국 세월의 흐름에 겨워하시며 인생의 막을 내리셨다. 올해 5월 8일, 네 분의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첫 어버이날을 맞이했다. 가야 할 곳이 없다. 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전부다. 더 이상 안면도에 가지 않는다. 장모님이 거기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청주에 가지 않는다. 아직도 집은 거기에 있지만 무조건 나의 편이던 어머니가 거기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교사인 아내가 2박 3일 수학여행을 떠났다.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사람들도 만나고 늦게 집에 들어와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는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불을 켜는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우리는 ‘집’이라 부르지 않고 ‘폐가(廢家)’라고 한다. 집은 물리적인 건물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부이다. 집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소속감을 느끼고, 서로 돕는 곳이다. 집은 어둠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집을 세우자’

2022년 통계청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결혼 건수는 작년 대비 0.4% 감소한 19만 2천 건이었다. 하지만 이혼 건수는 전년 대비 1.7%(2,100건) 증가한 13만 3천 건이었다. 우리는 물리적인 건물로서의 집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삶의 공동체로서의 집을 세우기 위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다. 국가는 젊은이들을 위한 주택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공동체로서의 집을 세우는 데 필요한 노력은 미흡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집을 세워야 한다. 이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부로서의 집이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정부와 사회는 아파트를 지으려는 노력과 더불어 공동체로서의 집이 튼튼해지도록 정책을 세우고 재정을 투자해야 한다.

‘내 삶에 석양이 비칠 때’

버스 정류장에서 바라본 붉은 석양과 자동차의 무수한 빨간 후미등이 나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너의 삶에 석양이 질 때 너는 돌아갈 집이 있니?”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배들은 자신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서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갔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집)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집)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확언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어떻게 그곳에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을 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알려 주셨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말했듯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날 때와 죽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삶은 언젠가 완전히 사라질 순간을 경험한다.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얻듯이 인생의 석양이 다가왔을 때를 대비하여 집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천상병 시인이 읊조린 ‘귀천(歸天)’의 마지막 시구가 우리의 것이 되면 좋겠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월간 <시조>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