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시론] 그 많던 민중은 어디로 갔는가?

2022.04.13 조회수 3,217 커뮤니케이션팀

[이국헌 삼육대 신학과 교수]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실제의 전투는 영웅들의 지략이 아닌 민중들의 의지로 치러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톨스토이의 의식 속에 민중이 하나의 사회적 주체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건 놀라운 것이었다. 마르크스에 의해 주도된 제1 인터내셔널이 1864년에 시작됐음을 고려할 때, 그 이듬해부터 쓰기 시작한 《전쟁과 평화》에서 민중을 주체로 등장시켰다는 건 작가의 탁월한 사회적 인식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19세기 사회는 제국주의적 팽창에 힘입어 사회 구성원을 백성 또는 신민이라는 종속적 객체로 여기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의식의 전환을 통해 민중이 등장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연합하고, 동맹을 맺으면서 19세기 말에 이르면 민중은 이제 당당한 사회 주체로 드러났다. 20세기는 민중의 시대였고,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민중의 혁명이 일상화됐다. 그런데 오늘날 그 많던 민중은 어디로 갔는가?

이 질문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패러디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삶 속에 내재된 한국 현대사의 편린들을 메타포화해 사라져간 것들의 추억을 소환한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 것들이 어디 싱아 뿐이겠는가? 문학을 벗어나 현실 사회로 돌아와 보면 정말 놀랍게도 그 많던 민중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그 단어는 아련한 추억의 대상이 됐다. 그 많던 싱아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근대화로 인한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나타난 자연의 변화 때문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민중이 사라진 것은 사회 변화에 따른 결과였다.

민중이 사회 전면에 등장했던 것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근대군주론의 전략과 맞닿아 있었다. 구조적인 모순을 극복하고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참여가 요청됐다. 근대 지식인들은 구조적 억압 속에 예속됐던 민중을 깨웠다. 의식화 교육을 통해 순응적 객체에서 자율적 주체로 거듭난 민중은 구조적 폭력에 맞서 공정한 사회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탈근대사회로 들어서면서 근대군주론은 해체되고, 신자유주의의 가속화로 공동 의식과 목적을 가진 민중은 사라졌다.

지젝이 지적하듯이 구조적 폭력이 극단적 폭력으로 고도화되고 있는 이 세계화의 시대에 그 폭력에 맞섰던 그 많던 민중은 어디로 갔는가? 존 산본마쓰는 《탈근대군주론》에서 근대군주론에서 꿈꿔왔던 사회주의 전략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민중의 연대를 다시 한 번 호소했다. 하지만 공동의 목적의식이 사라진 21세기의 시공간에서 민중의 재기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사회가 다원화되고 개별적 정체성이 강화됨에 따라서 민중은 사라졌지만 이제 새로운 주체인 다중(多衆)이 등장했다. 즉 그 많던 민중은 이제 다중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안토니오 네그리에 의해서 강조된 다중은 다양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개별적으로 행동하면서도 공동체의 발전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의제와 관련해서는 함께 연대하는 전 지구적인 시민을 말한다. 기후 변화, 세계 평화, 양극화 해소 등과 관련한 전 지구적인 대의(大義)를 위해 행동하는 주체가 된 다중의 출현은 우리에게 새로운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다중의 시대에 인류가 공존하고 번영하게 될 이상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장 지글러가 호소한 새로운 연대(solidarity)가 이뤄져야 한다. 생태정의, 경제정의,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다중은 서로의 가치에 동의하고 공동으로 행동해야 한다. 특별히 민중을 대신해 등장한 다중의 연대와 행동을 위해 교육의 방향은 의식화를 넘어서 행동화를 지향해야 한다. 지금 다중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네시스, 즉 실천적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교육은 그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26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