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동백, 겨울과 봄 사이_하태임 교수
직업이 화가라 전시회에서 많은 화분이 들어온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식물의 이름도 모를 뿐 아니라 축하의 의미로 들어오는 꽤 많은 화분을 두 달 채 살려보지 못하고 내보낸다. 여러 종류의 화분들을 건강하게 키워내는 지인들과 나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지난해 2월 겨울의 끝자락에 어느 산사를 찾았다. 산사를 떠나며 걸어 나오는 길목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생경하고 순박한 시골 처녀의 모습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두툼하고 질긴 강인한 생명력으로 치장을 한 그녀는 외로운 무색 계절의 풍경과는 완전한 콘트라스트를 보였다. 대번에 스쳐가는 직감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동백’이 맞다. 그녀의 이름은 동백이었다. 동백은 상록성으로 겨울에도 잎이 푸르고 싱싱하기 때문에 관상용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단다. 이 순박한 동백과 연관된 여러 기억들은 식물 문외한인 내게 더욱 반가웠다.
세월을 거꾸로 돌려 20년 전 파리의 유학생 시절, 장소는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으로 거슬러간다. 오페라 무대 정면으로부터 좌측 맨 꼭대기 4층 정도에서 일본인 친구 푸미와 자리에 앉아 있다. 그 당시 오페라 관람 메이트인 그녀와 나는 주로 학생들을 위한 저렴한 오페라표를 구입해 목을 거북이처럼 길게 뽑아 아득히 멀리 보이는 오페라 무대를 관람했다.
라트라비아타, 주세페 베르디의 아득한 아리아와 중창들을 놓치지 않으려 눈과 귀를 긴장시킨다. 가장 기억에 남기도 하고 으뜸으로 여기는 오페라다. 절절한 아리아와 아름다운 선율의 중창들이 눈과 귀를 충족시킨다.
라트라비아타는 알렉상드르 뒤마 2세의 소설 『동백아가씨』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소설은 그 당시 매춘여성에게 기품을 부여했다는 것 자체로 논란을 일으킨 화제작이다. 뒤마의 실제 연인이며 당대 유명했던 코르티잔(상류사회 남성들의 공인된 정부로 사교모임에 동반하던 여성을 지칭) 마리 뒤플레시가 폐결핵으로 죽고 나서 뒤마는 그녀를 기억하며 소설을 완성했다. 마리는 동백꽃을 좋아해 25일은 가슴에 흰 동백꽃을, 5일은 붉은 동백꽃을 달고 다녀 유행을 선동하였단다. 동백의 꽃말이 오페라의 비극적 결말과 함께 애틋한 스토리로 연결된다. “그대만을 사랑해.” 누구나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며 지켜지기 힘든 현실에서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순수함이 동백이라는 이름에 자연스럽게 중첩된다.
동백을 소재로 한 노래나 영화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도 그중 하나다. 한때 금지곡이었지만 여전히 나이 지긋하신 선배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또한 신라시대 중국으로 넘어가 많은 시인과 문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하니 동백의 광택 나는 외양과 겨울을 견디는 꽃이라는 의미에서 그들에게 많은 창작욕구를 불러일으켰을 법하다.
인생도 마치 계절과 같은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본인과 온 가족이 예술을 하고 있고, 남자 형제 사이에 껴 있는 둘째의 생존특성이 낳은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유난히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특히 흐리거나 으스스한 날이면 나의 기분은 날씨의 영향을 무척 받는 편이다. 감정의 일기예보라도 있다면 주위 가족들에게 미리 경계주의보를 내릴 수 있으련만…. 일조량이 짧아지고 추위가 몰려오면 나의 감정과 시선은 메마르고 거칠어진다. 나는 겨울 나기가 무척 힘들다. 그래서 시련의 시기에 꽃을 피우고 겨울을 견디는 동백꽃의 생명력에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온통 무색의 자연 틈에서 붉은 꽃망울을 오므려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며 개화의 시기를 기다린단다. 조선 중기의 학자 김성일은 『학봉일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봄철 늦게 핀 꽃을 좋아하나, 나는 홀로 눈 속에 핀 꽃 동백 너를 좋아하네.”
겨울과 봄을 잇는 가교의 역할 동백꽃을 가지고 잠시 여러 추억과 테마들이 혼재된 밤을 맞는다. 동백, 너는 지금 어디서 외로운 산사를 지키고 있느냐?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별빛마저 숨을 죽인 차가운 이 겨울의 끝자락에 임을 향한 붉고 생생한 마음을 고고히 천연색 수로 아로새기는구나.
하태임 화가·삼육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