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문학 속 가정 이야기] 타이거 마더와 스카이 캐슬

2023.10.12 조회수 3,279 커뮤니케이션팀

영화 《4등》

[노동욱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문학사상 편집기획위원]

예일대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Amy Chua)는 ‘호랑이 엄마’(tiger mother)로 유명하다. 에이미 추아가 2011년에 출간한 《타이거 마더》(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는 교육방식과 관련하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 책은 에이미 추아가 하버드에 입학한 두 딸을 어떻게 교육했는지, 자신의 교육관과 교육방식을 담고 있다. 독자로서,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그 어떤 관점으로 이 책을 읽든, 나는 읽는 내내 그저 숨 막히는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꼈다.

《타이거 마더》는 처음부터 끝까지 에이미 추아의 독선과 독단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동양 교육과 서양 교육을 이분화 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서양 교육을 혹독하게 무시하고 깔아뭉개는 오만함, 자신의 방법만이 옳다는 아집, 결과만 중시하는 성과주의로 가득 차 있다. 자식을 잘 키워내겠다는 ‘호랑이’ 같은 집념은 자식에 대한 사랑인지, 자신의 욕심인지 분간할 수 없다. 에이미 추아는 딸들이 자신의 교육방식에 대해 극렬한 증오심을 발산하는 것조차 은근히 즐기는 듯 했다. 밤늦게까지 딸에게 악기 연습을 시키며, 저녁도 거르게 하고, 물을 마시러 가지도 못하게 하며,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게 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것이 교육인지 아동학대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는 에이미 추아의 자기 확신은 어떤 면에서 부럽기조차 하다. 옆도 뒤도 돌아볼 필요가 없고, 딱히 깊은 고민이나 성찰을 할 필요도 없으며, 아이들의 기분이나 정서, 인성 등은 살피고 돌아볼 필요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며 목표 달성을 위해 고집스럽게 자기 갈 길만 가면 되니까 말이다. 에이미 추아의 유일한 관심사는 자식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두 딸은 ‘신동’ 소리를 듣게 되었으며, 결국 모두가 부러워마지 않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였으니, ‘타이거 마더 교육법’은 성공했다고 해야 하나?

2011년 《월 스트리트 저널》에 〈왜 중국 엄마는 우월한가?〉(“Why Chinese Mothers Are Superior”)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는 에이미 추아는, 자녀를 따뜻하게 대하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는 서양 교육을 시종일관 조롱하며, 일방적 주입과 고된 훈련을 강조하는 중국식 교육을 예찬한다. 그런 그녀조차 강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더 나아가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한국 학생들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국 학생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김 씨네 아이들은 뭘 하는 줄 아니? 연습이야. 김 씨네 가족은 휴가를 떠나지 않거든. 그들이 우리보다 앞서 나갔으면 좋겠니?” 에이미 추아조차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K-교육’ …… 우리는 이 대목에서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부끄러워해야 할까?

한편, 2018년에 JTBC에서 방영된 《스카이 캐슬》에서 보듯 그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타이거 마더》는 비판적 성찰보다는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으로 수용되고 소비된 측면이 있다. 에이미 추아의 중국식 교육방식과 한국식 교육방식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골프선수 박세리의 아버지는 딸의 담력을 기르기 위해 밤늦게 공동묘지에서 훈련을 시킨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이 되었다. 특히 서양에서는 이를 두고 ‘아동학대’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박세리 선수에 따르면, 공동묘지 훈련은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골프장들은 대부분 산을 깎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근처에 공동묘지가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고 내려가다 보면 아직 조명이 없던 시절이라 근처에 무덤이 보여 무서웠다는 말이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우리나라에서 공동묘지 훈련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박세리 선수 아버지의 훈련이 ‘신화화’ 되었다는 것이다. 훈련방식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은 삭제된 채, 공동묘지 훈련은 그저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한 일환으로 소비된 것이다. 실제로 박세리 선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후배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언니, 저도 공동묘지 훈련 했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공동묘지 훈련은 자식을 세계적인 골프선수로 키워내기 위한 일종의 보증된 훈련과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 영화 《4등》 스틸

영화 《4등》은 우리나라의 성과주의 교육의 폐해를 아주 적나라하게 재현한다. ‘4등’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수영 선수 준호는 순위권 밖인 4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등에 목말라 있는 준호의 엄마는 광수를 수영 코치로 채용하는데, 광수는 준호에게 폭력을 가하며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고, 엄마는 아들의 좋은 성적을 기대하며 이러한 폭력에 눈 감는다. 드디어 준호는 수영 대회에서 2등을 차지하여 은메달을 목에 건다.

준호의 은메달 소식에 모처럼 화기애애한 준호네 집. 그런데 준호의 동생 기호의 질문은 그런 집안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정말 맞고 하니까 잘 한 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맨날 4등 했던 거야, 형?” 사실 이것은 준호네 집에 찬물을 끼얹는 질문이 아니라,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부모들에게, 교육자들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교육의 불편한 현실에 찬물을 끼얹는 질문일 것이다.

폭력이 이처럼 단순히 물리적 폭력뿐이겠는가? 수많은 학생들,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정신적 폭력이야말로 더욱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적 폭력은 물리적 폭력에 비해 비(非)가시적이고 그 폭력의 경계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에 쉽게 간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능이라는 절대적 지상과제 앞에서 우리의 교육은 오늘도 여전히 교육과 아동학대의 경계에 우뚝 서 있는 담벼락 어디쯤을 아슬아슬하게 곡예 하듯 걸어가고 있다.

월간 <가정과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