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마음건강] 음식, 사랑의 언어

2024.09.10 조회수 891 커뮤니케이션팀

[안재순 상담심리학과 교수]

요즘 식사 후 빠질 수 없는 코스가 카페다. 배가 부른데도 카페에 들러 달달하고 시원한 음료와 함께 빵이나 조각 케이크 혹은 빙수를 앞에 두고 흔히 “디저트 배는 따로 있으니까 먹자”라며 즐긴다. 밥 먹고 ‘입가심만 해야지’라며 한두 개 집어 먹다가 결국 커다란 과자 한 봉지를 다 비웠다든지, 식사 후 뭔가 허전하여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냉장고를 뒤지거나 간식을 찾은 적이 있는가?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알싸하게 맵고 짠 마라탕으로 식사를 한 후 생과일에 설탕 시럽을 듬뿍 묻혀 코팅한 탕후루를 먹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다. 그 결과 ‘단짠단짠’에 중독된 아이가 많다.

배가 고프고 당이 떨어졌을 때 우리의 몸은 생존을 위한 식욕을 느낀다. 그러나 생존에 필요한 열량과 영양분을 이미 배부르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은 ‘쾌락적 식욕’이다. 식욕과 에너지 균형을 연구한 제임스 스텁스 교수는 “사람은 쾌락적 동기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을 하므로 거의 모든 사람이 쾌락적 음식 섭취를 경험한다”고 했다.

가짜 식욕

요즘은 눈만 돌리면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이 넘쳐난다. 집 근처 편의점에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넘쳐나고,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순식간에 음식이 집으로 배달된다. 유튜브와 방송에서는 ‘먹방’이 우리의 입맛을 유혹하고 SNS에는 자신이 먹은 음식 사진을 올리거나 맛집을 소개하는 게시물이 넘쳐난다. 화를 풀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먹고 마시는 것을 권하는 사회 분위기도 음식중독을 증가시킨다. 바야흐로 지금은 우리의 식욕을 유혹하는 시대이다.

대부분의 음식중독은 ‘불안정한 마음’과 관련된 심리적 요인이 많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아이스크림 한 통을 먹어 본 적이 있는가? 고독하고 우울한 밤에 혼자서 술을 마셔 본 적이 있는가? 마음이 헛헛하면 배는 부른데도 이상하게 먹는 게 당긴다. 이것은 가짜 식욕이다. 허전함, 불안, 우울감, 분노, 외로움, 공허감은 감정적 허기를 느껴, 자극적이고 달고 짠 음식을 먹으며 결핍된 사랑과 인정을 대신하여 음식으로 채워 넣는다.

내가 음식중독이라고?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고 음식중독으로 진단하진 않는다. 음식중독이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식탐’이다. 식탐은 배가 불러도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음식 중독자들의 뇌를 살펴보면 마약중독, 게임중독처럼 설탕, 밀가루 같은 정제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나오는 도파민이 뇌 전체로 전달되어 쾌감을 유발한다. 도파민은 우리 몸에서 즐거움, 쾌감 같은 신호를 전달하여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사람들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할 때 주로 빵이나 케이크, 마카롱, 커피, 술을 찾게 되는데 이런 음식은 도파민을 급격히 상승시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집중력과 활력을 순간적으로 향상시킨다. 문제는 우리 몸이 이 잠깐의 짜릿한 기분을 기억해서 자꾸 음식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 사진=envato elements

생명의학연구소인 ‘스크립스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쥐에게 인스턴트식품을 지속적으로 섭취하게 한 결과 쥐들은 약물중독과 비슷한 성향을 보였다. 인스턴트식품에 중독된 쥐들은 다리에 전기충격을 가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먹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인스턴트식품을 끊고 건강한 먹이를 주자 2주 동안이나 단식 투쟁을 했다. 이들의 뇌를 살펴본 결과 코카인, 헤로인 중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도파민2 수용체가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

연구자는 “고칼로리 인스턴트식품들이 마약처럼 뇌의 보상 중추를 과도하게 자극해 쾌락을 유발함으로써 먹지 않고는 못 견디는 강박 섭식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음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식품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의지력이 강한 사람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는 대부분 무릎을 꿇는다.

참을 수 없는 음식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여러 연구에 의하면 과식이나 폭식을 하는 75%는 배가 고플 때가 아니라 기분이 안 좋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라고 한다. 음식으로 마음의 위로를 얻으려는 것은 마치 큰 수술 후에 일회용 반창고로 상처를 덮는 것과 같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음악 듣기, 동식물 키우기, 봉사활동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 식후 20~30분 산책, 야외에서 햇빛을 보며 걷기 등을 통해 뇌를 쉬게 하고 도파민을 증가시켜 뇌 안의 새로운 보상체계를 만들 수 있다.

규칙적으로 일찍 잠드는 습관은 식욕 호르몬을 줄이고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을 증가시킨다. 심리적 허기가 몰려온다면 ‘지금 내 마음이 힘들어서 보내는 내 몸의 메시지구나’라고 받아들이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달려오느라 지친 내 마음에게 “수고했어, 잘 견뎠어, 정말 잘했어”라고 다독이며 스스로를 격려해 주면 어떨까?

둘째, 중독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접근성이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음식 콘텐츠를 시청한 사람은 허기를 느끼게 되고 두뇌의 보상 중추를 자극해 식탐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러므로 ‘먹방’을 보지 않기, 탄산음료, 감자칩, 도넛, 냉동피자 등 집 안 구석구석에 쌓인 인스턴트식품을 치우고, 배달 앱 회원 탈퇴 등을 실천하고 가급적이면 채소와 과일 등과 같은 지중해식 식단으로 직접 음식을 해 먹으면서 조금은 지루한 준비 과정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음식은 맛이자 기억이다. 기억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어릴 때 입맛이 평생 간다. 입맛은 어렸을 때부터 경험한 맛을 기억하고 배우는 과정 속에 좋고 싫음의 기준을 만든다.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쾌락 중추를 잘 훈련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성장하면서 가족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식사한 추억들, 친구나 가족과의 교류를 통한 정서적 지지, 의미 있는 종교적 체험들, 운동, 자연 속에서 시간 보내기 등은 쾌락 중추를 자극하여 긍정적인 보상 체계를 형성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출산한 산모는 아이와 첫 번째 만남에서 모유 수유를 한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와 함께하는 첫 식사이자 엄마의 사랑을 처음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부모들이여! 집에서 만들어 준 음식이 맛없다고 불평하는 아이들 앞에서 기죽지 마라. 진심이 담긴 음식은 사랑이요, 생명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힘이 있다. 또한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된다. 여유로운 시간에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함께 즐기라.

월간 <가정과 건강>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