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대학정론] 사라지는 순수학문

2020.11.19 조회수 4,225 커뮤니케이션팀

[이국헌 삼육대 신학과 교수]

국내 대학들의 학사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순수학문 분야의 학과들이 대폭 사라지고 그 분야의 입학 정원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대계열별 모집학과, 입학정원 증감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순수학문 계열에 속한 학과들 중 292개 학과가 사라졌고, 입학정원도 2만9983명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문계열의 경우 148개 학과가 폐과되었고, 이로 인해 8756명의 정원이 감소되었다. 사회계열은 43개 학과, 1만5184명, 예체능계열은 101개 학과, 6043명이 각각 감소했다. 이 외에도 기초과학 분야인 자연계열의 학과도 75개가 사라지고, 5536명의 정원이 감소되는 등 기초 및 순수학문 분야에서 학사 구조조정이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급변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대학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학사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학령인구의 감소와 대학 구조개혁에 따른 정원 축소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대학들이 학사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그 결과로 학과들이 폐과되고 학과별 입학정원이 축소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에도 불구하도 공학계열과 의약계열은 학과수 및 입학정원이 오히려 증가했다. 위에서 언급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공학계열의 경우 지난 8년간 86개의 학과가 신설되었고, 입학정원도 4010명 증가했다. 의약계열의 경우에도 입학정원이 2871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대학들은 혁신의 필요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학계열의 학과들은 늘이고 순수학문계열의 학과들은 줄이는 방향으로 학사 구조조정을 시행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학사 구조조정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공학계열의 학과들이 신설되고 정원이 증가한 것은 몇 가지 요인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미래 인재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IOT, AI, 빅데이터, BT, 에너지 등과 관련된 학과와 정원이 확대됐다. 각 대학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이런 분야 학과들의 신설 혹은 융복합 과정 개설을 적극 추진했다. 아울러 이와 맞물려 정부에서도 프라임 사업 등을 통해 공학계열로의 학사 구조개편을 적극 지원하였고, 대학들은 이 재정지원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공학계열 중심의 학사 구조를 강화했다. 공학계열 중심의 학사 구조조정이 기술인본주의가 대세인 현재 사회적 분위기에 부합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현실적인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대학들이 지향하고 있는 공학계열 중심의 학사 구조조정이 순수학문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은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대학이 교육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수요자중심의 학사 제도를 구축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이런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공학계열 중심의 학사 구조조정의 흐름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인문, 사회, 예술 등을 도외시하는 분위기로 확대되어 순수학문 분야에 대한 전략 부재를 가속화한다면, 국가 백년대계는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단지 첨단기술 능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인간과 사회와 자연과 문화를 조화시키는 총체적 인식력과 창의력을 포함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대학 교육의 방향은 모든 학문 분야의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문, 사회, 예술 계열의 학과들이 무분별하게 축소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현재의 대학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방향으로의 학사 구조조정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전략적 측면에서 볼 때 그런 추세를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순수학문을 보호하면서 지속가능한 대학 교육을 이끌기 위해 정부와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문제와 관련 전문가들은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전략 수립을 핵심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는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으로 개정(2018)된 ‘인적자원개발 기본법’에 기초해 장기적인 인적자원개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대학들은 이런 교육부의 계획에 따른 학사 제도를 마련하여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57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