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대학정론] ‘대학 자율 혁신’의 선결 과제

2020.01.03 조회수 3,105 커뮤니케이션팀

먼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자(送舊迎新)고 덕담을 나누고 싶다.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謹賀新年)는 인사를 모든 교수 공동체에 올리고 싶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지만 새해가 아닌 것은 고등교육의 현장에서 교육 혁신을 추구하는 모든 교수들의 공통된 정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묵은해를 떠안고 새해를 맞이한 상황이어서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대학사회에서 최대의 화두로 떠오른 과제는 단연 “위기”와 “혁신”이었다.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 및 대학경쟁력 약화로 인한 대내외적 위기와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학구조개혁 및 교육 혁신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 과제임에 틀림없다. 고등교육의 미래를 염려하는 모든 사람들은 적어도 이러한 위기에 대한 진단과 혁신에 대한 대의에 있어서만큼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그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정부와 대학들이 제시하는 방향의 결은 사뭇 다르다.

지난 한 해 동안 정부의 정책들은 대학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개혁과 혁신을 추진기 어려운 방향으로 제시되었다. 등록금 동결과 입학금 단계적 폐지에 이은 강사법 개정은 대학의 열악한 재정난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국 사태로 인해 촉발된 정시 확대 결정은 대학의 자율선발권을 축소시키는 정책적 퇴행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은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편람 시안에 대한 공청회도 갖지 못한 채 한 해를 마감했다. 여기에 대학기본역량진단과 연계된 대학혁신지원방안은 2주기 방안에서 크게 개선되지 못해 누적된 대학 재정 문제를 해소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정책적 한계로 인해 대학의 위기에 대한 불안감은 고스란히 새해로 넘겨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3주기 진단의 정책 기조를 “대학 자율 혁신”에 두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율 혁신이란 단순히 정원 감축에 있어서 대학의 자율성을 의미한다.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신입생 및 재학생 충원율을 높게 배점하고, “유지 충원율” 개념을 도입해 일정 수준 이상의 충원율을 유지해야만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자율적인 정원 조정을 유도하겠다는 발표에서 자율 혁신의 정책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대학 자율 혁신의 방향이라는 정부의 정책에 대학들은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자율 혁신을 위한 기본 전제는 무엇일까? 개인마다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헌법에 명시된 “대학의 자율성 보장”이 그 전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자율성이란 입시 정책에서부터 대학 운영 및 교육혁신과 대학 구조개혁, 나아가 우수한 인재 양성을 통한 대학경쟁력 강화까지 투입-과정-성과의 전 단계에서 대학이 교육 목적 및 발전 방향과 연계해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학 자율 혁신”의 선결 과제는 이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부는 더 이상 대학을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대학 스스로 혁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 기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새해에는 정부와 대학 간에 더 강력한 파트너십이 요구된다. 21세기에 우리 앞에 도래하고 있는 초현실사회에서 전문화된 대학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는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야 하며, 대학은 자율 혁신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갖춰야 한다. 정부와 대학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도 추구하는 방법이 다르면 긴급한 대의를 실현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경쟁률이 세계 30위권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지체되거나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새해에는 정부와 대학이 협력하여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한 합리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율 선발권 확대, 대학 재정 확대, 구조조정, 특성화 및 이공계 강화, 지방대 활성화 등 현안들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대학을 통제하는 정부, 혁신을 거부하는 대학은 지양되어야 한다. 지난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공명지조”(共命之鳥)와도 같은 교육부와 대학이 함께 협력하여 자율 혁신의 대로를 여는 새해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국헌 삼육대 신학과 교수]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6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