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대학정론] 고등교육 정책의 정치화?

2020.03.12 조회수 3,447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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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몰고 온 바이러스의 공포로 일상이 마비된 지 한 달이 넘었다. 이 문제가 개강을 앞둔 대학가 끼친 영향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거의 전 대학이 개강을 2주 이상 미루고, 개강 후에도 이번 달 말까지는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는 초유의 상황이 여러 대학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쯤 되면 미증유의 위기란 표현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의 팬데믹을 앞두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서 국가적 재난 수준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에 교육 정책에 대한 이슈를 논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민들이 예방에 최선을 다하면서 삶을 이어가듯, 교육의 주체들은 교육 정책에 대한 시사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25일에 교육부는 ‘고교 교육 기여대학 지원 사업’ 개편안을 발표하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부분의 재정 지원 사업 계획이 미뤄지는 상황에서 이 사업만큼은 예정대로 발표되었다. 이 개편안에는 지난해 11월에 발표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반영하기 위해 수능 위주 전형 비율 확대, 지역 균형 발전 관련 전형 운영 등을 포함시켰다. 이 개편안에 따라서 대학들은 2022년 입시에서 수능 위주 전형을 30% 이상(수도권 대학, 지방대학은 학생부 교과전형)으로 확대하고, 대입 정원의 10%(기존 적용 대학은 20%)를 지역 균형 발전 관련 전형으로 선발해야만 지원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이번 지원 사업 개편 방향이 대입 공정성 강화 정책과 맞물려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정책에 담긴 몇 가지 논쟁적 이슈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번 지원 사업 개편안은 또다시 교육 정책의 정치화 문제를 야기했다. 지난해 대입 공정성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교육 현장에서는 일방적 정책 수립이 아닌 집단지성적 합의 도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3개월 만에 수립된 이번 개편안에는 그런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는 못한 채 발표되었다. 정부는 이번 지원 사업의 재정 규모를 확대하여 대학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대학들은 입시 정책 추진을 위한 재정 확보 차원에서 지원 사업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이런 합의되지 않은 정책들을 수용해야만 한다. 이처럼 재정 지원 사업을 통한 정책의 정치화는 이제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할 대입 전형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의 대학교육 정책 간의 부조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개편안은 2022년 입시에 적용된다. 따라서 수능 전형 확대 및 지역 균형 발전 관련 전형을 2022년부터 적용하게 될 경우 대입 사전예고제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입시 정책은 중등교육 정책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고교 교육의 안정화를 위해서 고등교육법에 명시된 입시예고제는 잘 지켜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편안은 당장 내년에 적용할 입시정책을 바꾸게 함으로써 수험생들의 대입전형 예측 가능성을 무너트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 간의 부조화 문제가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편안이 재정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슈는 이번 개편안이 고교 교육 정상화의 취지와 부합하느냐 하는 것이다. 지난 2014년부터 시행되어 온 고교 교육 지원 사업의 근본 취지가 고교 교육 정상화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취지를 살리기 위해 학생부 전형 위주의 모집 확대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수시전형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 방향이 다시 논의되었다. 이는 곧바로 고교 교육 정상화에 대한 문제를 야기했다. 정시 위주의 입시가 낳은 대표적인 폐해가 바로 고교 교육의 황폐화였던 점을 감안할 때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는 좀 더 신중한 논의와 접근이 필요한 사안임을 교육 현장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수능 위주 전형 비율 확대를 지원 사업 선정 지표에 포함시킨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지역 균형 발전 관련 전형의 경우 수도권 수험생들의 역차별 문제와 지방대학의 지역 인재 선발 전형과의 충돌 문제를 안고 있다.

한편으로는 고등교육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 정책의 정치화가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 사태의 종식을 위해 올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정책의 방향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도 지속되어야 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쫓기 위해 전문집단의 역량이 좀 더 집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국헌 삼육대 신학과 교수]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8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