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0월 24일 애플데이
[정성진 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10월 24일은 ‘애플 데이(Apple Day)’다. 애플 데이는 2002년에 학교폭력대책 국민협의회에서 사제 간과 친구 간에 애정과 화해가 담긴 사과(沙果)와 편지를 교환하여 따뜻한 학교를 만들자는 취지로 마련했다고 한다.
둘이서(2) 서로 사과(4)하기 때문에 애플 데이를 10월 24일로 정한 점과 사과(謝過)하고 싶은 사람에게 사과(沙果)와 편지를 건네며 용서와 화해를 청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애플 데이는 참으로 재치 있고 의미심장한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꺼내기 어려운 사과(謝過)를 맛있는 사과(沙果)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사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장치인 것이다.
용서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용서와 화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사례와 문헌들을 통해 절실히 느끼고 있다. 좁게는 개인 간의 사소한 문제부터 넓게는 민족과 국가 간의 갈등까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증오와 분노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미디어에서는 이러한 상처를 받을 때 복수하는 것이 통쾌한 것인 양 그려질 때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상처와 복수는 악순환만 되풀이될 뿐 결국 당사자 모두 불행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렇다고 용서와 화해가 쉬운 것도 아니다. 많은 눈물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서와 화해를 촉진시키는 가장 강력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과다! 진심으로 사과를 주고받으면 용서와 화해는 착착 진행되기 마련이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대사는 유명한 로맨스 영화 ‘러브 스토리’에 나온 것으로 많은 연인이 인용한다. 아마도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으니 사소한 것으로 인해 미안해하지 말고 당당해지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다. 아니면 사랑하는 사이에 미안할 행동은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는 뜻일까? 어쨌거나 이 대사는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어불성설이다.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서로에게 실수하고 상처를 줬다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과를 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애플 데이를 제정한 것도 어떻게 보면 주 5일 만나서 매우 친밀한 학교 구성원 사이에 사과가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잘 아는데 굳이 말로 사과를 표현해야 하나라는 생각에서, 아니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혹은 상처를 준 것조차 몰라서 사과가 드물다고 생각한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장 친밀하기 때문에 상처를 가장 자주, 가장 깊게 받는 곳이 가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고 부모도 자녀도 서로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것을.
사과의 언어 5가지
그렇다면 어떻게 사과해야 용서와 화해에 이를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사과의 원칙은 사과받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과 언어로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게리 채프먼의 <5가지 사과의 언어>에 나와 있는 사과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사과의 언어는 유감을 표명하는 “미안해.”이다. 상처 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 고통스럽다는 감정을 전달하며 사과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 미안해.”라고 말하면 안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미안한지 말해야 한다. 그리고 “미안해. 하지만~”이라고 토를 달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는 책임을 인정하는 “내가 잘못했어.”이다. 자존심을 굽히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다. 책임 인정은 나약한 것이 아니며 진정한 강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 사이에 자존심이 관계 회복보다 중요하겠는가? “미안해.”와 함께 “내가 잘못했어.”라는 표현을 들을 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느끼게 된다.
세 번째는 잘못을 보상하고 싶다는 표현인 “어떻게 하면 좋을까?”이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표현은 사랑을 확인하는 메시지다. 대체로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보상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친밀한 관계라면 ‘5가지 사랑의 언어’인 인정하는 말, 봉사, 선물, 함께하는 시간, 스킨십을 활용할 수도 있다.
네 번째는 진실한 뉘우침을 전달하는 “다시는 안 그럴게.”이다. 똑같은 상처를 다시 주지 않겠다는 다짐과 변화의 의지를 전달한다면 상대방은 용서의 문을 열기 쉬워진다.
다섯 번째는 직접 용서를 요청하는 “날 용서해 줄래?”이다. 상처 준 사람이 용서를 구하는 것은 관계 회복을 원하며 잘못을 깨달았고 처분을 상처받은 사람의 손에 맡긴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용서와 화해를 촉진시킨다.
예를 들어, 배우자의 결혼기념일을 깜빡했다면 이렇게 5가지 사과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여보, 깜빡해서 미안해요. 당신과 우리의 결혼은 내게 정말 중요해요.”, “내가 잊어버린 데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죠?”, “내년에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달력에 표시해 둘게요.”, “나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나를 용서해 주겠어요?”
가족 애플 데이를 가져 보자
앞만 보고 달리다가 서로에게 상처 주었는데 미처 사과하지 못했다면, 각 가정마다 촛불을 켜 놓고 가족 애플 데이를 가져 보면 어떨까? 위의 5가지 사과의 언어를 활용해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사과한다면 우리 가족은 새콤달콤한 사과 같은 가족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