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보가 아닌 감정을 교류하라
[정구철 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지금 성인들은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르던 시대를 거쳐 왔을 것이다. 멍하게 TV만 보면 바보가 된다는 뜻인데, 요즘 세대는 TV보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를 이용해 영상을 보고 정보를 얻는다. 그것들이 우리 자녀를 그 이름처럼 ‘스마트’하게 만들어 주고 있을까? 가족 모두 한집에 모였지만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앞에서 따로따로 활동하는 모습을 볼 때면, 오히려 바보상자라 불리던 TV 앞에 온 가족이 모여 도란도란 대화하며 같은 프로그램을 보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가족간 소통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늘어났는데, 과연 우리 가족은 더 많이 대화하고 더 가까워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가족의 소통을 늘리고 친밀감을 높일 수 있을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화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다. 자녀가 오늘 무엇을 했는지, 숙제는 다 했는지, 누구와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하기에 자연스럽게 저녁에 모이면 질문을 한다.
내가 궁금한 것을 묻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듣고, 만일 그 답변이 ‘숙제를 다 했다’라는 등 내 맘에 드는 답변이라면 아마도 우리의 대화는 적당한 칭찬을 한마디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부모는 자녀의 모든 것이 궁금한데, 자녀는 부모의 이러한 것들이 전혀 궁금하지가 않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오늘 직장에서 무얼 하셨냐?’고 묻는 자녀를 본 적이 있는가?
“아버지, 여기 좀 앉아 보세요. 오늘 점심은 누구랑 드셨어요? 아, 그분은 업무 성적이 좋은 편인가요? 그분은 어디 사시나요?” 직장에서 누구와 식사했는지, 동료들과 다투지는 않았는지 묻는 자녀가 있는가? 질문하지 않는 이유는 궁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는 자녀에게 이런 질문을 매일 하고 있으니 자녀들은 대답하기가 귀찮고 간섭처럼 느끼기도 한다. 자녀에게 묻고 그에 대한 답변이 마무리되면 더 나눌 이야기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자녀는 여러분에게 질문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연인은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 역시 서로의 일과를 묻고 답하는 듯한데,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일이 즐겁고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진다.
차이가 무엇일까?
정보가 아닌 감정을 교류하라
연인 간 대화의 특성을 살펴보면, 정보의 교류 과정이 아니라 정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고 있다. 그날 일어난 일 자체보다는 그 일로 경험한 연인의 감정을 더 우선시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다.
가족의 대화가 길어지고, 친밀감도 커지려면 정보가 아니라 감정을 교류해야 한다. 대화 시간을 늘리겠다고 ‘오늘 무엇을 했는지’처럼 주로 일과를 자세히 묻는다면, 답변은 정보 전달에 필요한 부분만 꺼내고 마무리될 것이다. 흔히 가족의 대화는 사실과 경험을 보고하는 것,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확인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친밀감을 높이는 대화는 ‘사실’을 주고받는 이성적인 대화가 아니라 ‘감정’을 주고받는 감성적인 대화이다. 친밀감이란 따뜻함, 위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가족의 친밀감을 높이려면 사실 중심의 대화가 아니라 감정 중심의 대화가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자녀들이 무엇을 하는가에 관심이 높지만,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아이들 또한 부모가 무엇을 느끼며 사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렇듯 가족들이 서로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감정과 공감을 나누는 일은 미숙할 수 있다.
가족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대화 방법으로 항상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연습을 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감성적 대화하기
감정 표현에 익숙지 않은 우리는 자신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잠시 길을 잃어버렸던 아이를 찾게 된 엄마가 너무나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말도 없이 어딜 돌아다니느냐’고 아이를 나무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이가 미운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다행이고 기쁜데,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표현하는 데 미숙하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셨고,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만일 이런 질문을 지금 듣는다면, 현재 자신의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이 ‘좋았다’라거나 ‘나빴다’라거나 ‘그냥 그랬다’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답한다.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 “응, 그냥 그랬어.” 하루 종일 아무런 기쁜 일이 없었다는 것일까?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우리는 ‘좋다’, ‘나쁘다’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이것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고 표현하는 데 미숙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감성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첫 번째로 자기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표현해야 한다. 앞으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활용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보자. 오늘 하루는 “신나는, 기쁜, 놀라운, 흥미로운, 흐뭇한, 뿌듯한….” 하루였다고 표현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표현하면, 두 번째 단계로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혹시, 자녀가 아직도 이분법적으로 표현한다면 그의 마음에 맞는 단어들을 추측하고 표현해보자. 잘 맞추었다면 공감을 해 주었으니 대화가 더 확장될 것이고, 만일 틀려도, “그게 아니라….” 하면서 좀 더 정확한 자기의 감정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이렇게 감성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공감만 해 주어도 친밀감이 증진될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단순히 그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결국 그가 바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예측해 보는 것이다. 오늘 그저 그렇게, 지루한 하루를 보냈다고 대답한우리 가족은, 사실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었던 걸까?
무언가 성취감을 느끼는 하루? 친구들과 함께 웃고 싶었던 하루? 무탈하게 지나가 안도감이 넘치는 하루? 우리가 느낀 것을 넘어 바랐던 감정을 서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 단계에서 서로가 느끼고 바랐던 감정을 조절해 보는 것이다.
오늘은 비록 아쉽게 지났지만, 내일은 그렇게 느끼는 하루가 될 거라고, 서로 그렇게 느끼는 삶을 살아보자고 공감하며 지지해 주는 것이다. 아울러 그런 감정을 느끼기 위해 내일은 무엇을 할지 계획해 볼 수도 있다. 이제 내일 저녁에 나눌 대화거리도 생겼다. 이렇게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는 가족 대화는 그냥 그랬던 하루를 다양한 감정으로 가득 찬 하루로 변모 시켜 줄 것이다.
공감하고 바람을 나누는 대화로 가족 간 친밀감을 증진해보자. 자녀와는 물론 부부간에도 이러한 감성 대화가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