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기고] 이강성 삼육대 경영대학원장

2017.04.03 조회수 3,480 홍보팀


사내하도급 ‘규제’는 일자리에도 毒

대선이 불과 39일 남았다. 정치권은 5·9 조기 대선에 맞춰 모든 정치 활동을 집중하고 있다. 매번 선거철이면 그랬듯이 이번에도 노동계의 표심을 확보하기 위한 포퓰리즘 노동정책을 마구 쏟아내고 있어 우려가 크다. 게다가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한 미국의 트럼프노믹스와 사드(THAAD) 배치 문제로 인한 중국의 노골적인 보복 조치 등 우리나라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도 가장 곤혹스러운 쪽은 기업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법원의 판결을 보면 기업들이 그나마 지탱해 왔던 최소한의 인력 유연성마저 잃게 돼 더는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지난 2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은 우리나라 대표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와 기아차 사내(社內)하도급 판결에서 ‘직접 컨베이어 벨트와 무관한 간접공정도 불법파견 대상이다’고 판결했다. 이는 제조업에서는 제품을 만드는 것부터 출고에 이르기까지 전체가 하나의 공정이기 때문에 부분적 사내하청은 안 된다는 의미다. 심지어 포장과 물류처럼 생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간접부문까지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으니 사실상 공장 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사내하도급 근로자들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판결은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 기사 운용에 대해 적법도급 판결을 내린 것과도 배치된 결과다. 하도급 운영에 있어 매우 유사한 정황을 갖고 있는 두 사건이 단순히 업종 차이로 인해 이렇게 엇갈린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 결론을 내리겠지만, 만약 대법원마저 2심을 유지한다면 사실상 대한민국 제조업에서는 사내하도급 활용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해석이 나온다. 파견도 막고 사내하도급도 엄격히 제한해 안 된다고 한다면 기업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더 이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경쟁하고 있는 선진국들은 어떨까. 어느 나라에도 제조업 내 불법파견 문제가 이슈인 곳이 없다. 합법적으로 제조업 파견근로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제조업 파견에 대한 규제가 전혀 없으며, 심지어 폭스바겐은 자체적으로 파견업체를 운영해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영한다. 일본은 2004년 제조업 생산 공정에 파견근로를 전면 허용했고, 미국은 기업의 인력 운영에 대한 제약 자체가 없다. 결국, 핵심은 유연성이다.

이런 유연한 고용 환경은 단순히 기업 경영에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고용 형태의 인정은 우리의 심각한 사회문제인 일자리 창출에 큰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파견 확대가 일자리 창출에 효과가 있음은 독일·일본 같은 국가의 실증 사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강력한 노동조합이 자리하고 노동법제가 경직돼 있는 환경 때문에 국제경쟁력에서도 점차 뒤처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국회마저 근로시간 단축을 아무런 연착륙 방안도 없이 법안 처리하겠다니, 과연 산업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진행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기업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악조건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방편을 어떻게든지 찾아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법원의 판결로 사내하도급을 통한 최소한의 인력 유연성마저도 잃게 된다면 우리나라 제조업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근로자와 기업 모두가 상생하고 국가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0331010337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