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소식

故 신계훈 목사 20주기 추모예배 엄수

2024.02.28 조회수 4,912 커뮤니케이션팀
share

유가족·추모객 등 200여명 참석
익명의 재단, 장학기금 14만불 기부

▲ 추모예배 참석자들이 故 신계훈 목사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한국 재림교회의 영적 기둥이었던 일산(一山) 신계훈 목사의 20주기 추모예배가 지난 14일 삼육대학교회에서 엄수됐다. 추모예배에는 유가족과 추모객 등 2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뜻을 기리고 부활의 소망을 나누었다.

예배는 신인철 목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충열 목사의 기도를 시작으로, 이학봉 목사의 고인 약력 소개, 김상래 전 총장의 말씀, 한국연합회 총무 박정택 목사와 김은배 신학과 교수의 추모사 순으로 거행됐다.

신계훈 목사의 제자이자, 신학과 후배 교수로 동역했던 김상래 전 총장은 이날 말씀에서 고인과의 인연을 추억하며 “목사님은 정녕 우리의 자랑스러운 목사님이셨고, 교수님이셨고, 총장님이셨고, 연합회장님이셨다”라고 말했다.

▲ 김상래 전 총장 말씀

김 전 총장은 고인을 모세에, 남겨진 이들을 여호수아에 비유했다. 그는 “여호수아가 모세의 제자요, 후배요, 수종자였던 것처럼, 여기 와 있는 우리는 모두 그분(신계훈 목사)의 제자요, 후배이다. 여호수아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마침내 그가 삶을 다했을 때 그의 스승 모세처럼 여호와의 종으로 기록된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스승인 신계훈 목사님처럼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전 총장은 유족들에게 “우리가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더딘 것이 아니라 단지 잠시 잠깐 후일 뿐이다”라며 “이 약속 때문에 흐르는 세월은 남편과 아빠와 헤어진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그리운 부군을 다시 만날 단축이 되는 것이다. 이 약속을 다시 확신하면서 신실하게 진실하게 주의 뜻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 고인의 장녀 신정은 씨가 가족인사를 하고 있다.

신계훈 목사의 장녀인 신정은 씨는 가족인사에서 고인의 묘비에 적혀 있는 디모데후서 4장 7~8절 말씀을 인용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는 “생전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성경절이었고, 아버지가 삶을 살았던 방식을 생각나게 한다”며 “아버지는 오직 하나님만을 위한 삶을 사셨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 영원한 가치의 힘을 소개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추모객들에게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아버지를 기억하고 기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 추모 음악회

2부는 추모음악회로 꾸려졌다. 바리톤 이인규, 소프라노 신선미, 피아노 이신혜, 오르간 이영자, 바이올린 류리나 등 음악인들이 무대에 올라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장학기금 전달식도 있었다. 익명의 재단은 고인의 정신을 기려 삼육대에 ‘신계훈 장학기금’ 14만불(한화 약 1억 8638만원)을 쾌척하고, 매년 7만불(약 9320만원)을 지속적으로 기부하기로 했다.

신계훈 목사는 1940년 강원도 양양 출생으로, 1965년 삼육대 신학과, 1970년 필리핀 유니언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앤드류스대 대학원에서 신학석사(M.Div.)와 목회신학박사(D.Min.) 학위를 받았다. 유학 기간에는 미국 앤드류스교회, 배틀크릭교회, 네파교회를 담임하며 교회의 초석을 놓는 일에 진력했다.

삼육대 신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신학대학원장, 총장, 이사장, 한국연합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연합회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췌장암이 발병해 치료를 받던 중 2004년 2월 13일 로마린다병원에서 향년 64세로 잠들었다.

저서로는 ‘성서와 과학’, ‘요한계시록 연구’, ‘구약성서 배경’, ‘다니엘서 최신연구’,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넉넉히 이기느니라(공저)’ 등이 있다. 이외 15편의 논문과 300여 편의 기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