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퐁투아즈의 봄

2021.05.14 조회수 2,954 커뮤니케이션팀

사제지간의 따뜻한 정, 봄꽃으로 힐링하다
김성운 교수의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의 봄’, 65.5×81cm, Oil on canvas, 1877, 오르세미술관

피사로는 세잔느의 스승이다. 피사로가 없었다면 오늘날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세잔느도 없었을 것이다.

고갱의 스승이기도 한 피사로는 성품이 온화하고 친절하여 모네, 고흐, 르노아르 등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었다. 피사로는 어려운 살림에도 오히려 가난한 후배 화가들의 그림을 사 주는 ‘큰 형님’ 같은 역할을 한다. 더구나 피사로의 집에는 헌신적인 착한 부인이 있어 항상 가난한 화가들로 붐볐다.

까칠하고 자존심 센 세잔느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너는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다”는 격려를 하고 그와 직접 동행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하루는 세잔느가 피사로와 함께 그림을 전시하면 자신의 그림이 안 팔릴 것을 염려하고 무례하게도 스승에게 전시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피사로는 모든 전시회에 출품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도 당돌한 제자의 요청을 들어준다. 착한 부인도 “은혜를 모르는 세잔느를 배려하지 말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녀는 한때 너무 궁핍하여 강물에 투신하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세잔느를 거두어 주었는데 이기적으로 변한 그가 너무 얄미웠다.

‘퐁투아즈의 봄’은 액상프로방스라는 지방에서 온 세잔느를 퐁투아즈로 데려와 함께 있을 때 그린 그림이다. 세잔느는 퐁투아즈에서 10점의 풍경화를 남긴다. 퐁투아즈는 고흐가 죽은 오베르 근처에 있으며 경치가 수려한 곳이다. 도시가 큰 언덕을 중심으로 있어 자연히 아래에서 올려다 본 앙각의 풍경화가 많다.

‘퐁투아즈의 봄’은 피사로가 존경하는 영국 화가 코로의 영향을 받은 그림으로 피사로의 질박한 온기가 드러나는 따뜻한 그림이다. 이 그림의 구도는 화면 중앙에 큰 나무를 배치한 삼각 구도로 근경은 꽃나무와 양배추밭, 원경은 집, 언덕으로 깊이감을 높였다. 봄이 되어 물이 잔뜩 오른 수목과 연둣빛 잎과 풀, 파란 하늘은 그림에 생동감을 준다. 평론가 에밀 졸라는 “피사로의 그림 속에서는 대지의 심원한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이 그림 속에서 참다운 스승의 향기가 전해진다. 세잔느는 피사로가 죽자 “세잔느, 피사로의 진정한 제자”라고 스스로 말함으로써 스승에 대한 미안함, 감사함이 묻어 있는 강한 존경심을 표했다.

필자는 피사로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루브시엔에 살면서 그의 유적을 찾아 기차를 타고 퐁투아즈로 갔던 적이 있다. 퐁투아즈 시는 그가 30년 간 살았던 곳을 홍보하기 위해 시내에서 제일 높은 곳에 ‘피사로미술관’을 설립했다. 필자가 둘러본 그때는 마침 봄이라 미술관 정원에 봄꽃이 만발하여 피사로의 인격이 더 도드라져 보였던 기억이 난다.

글 김성운
화가, 삼육대학교 아트앤디자인학과(Art& Design) 교수, 디자인학 박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한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 단체전 230회, 파리 퐁데자르·라빌라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대한민국현대미술전 심사위원,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재림미술인협회장, 작품 소장 :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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