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2019.05.14 조회수 5,789 커뮤니케이션팀

김성운 교수의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점묘로 힐링하다

파리지앵들은 산책을 매우 좋아한다.

특히 일요일이면 남녀노소, 강아지까지 센 강변으로 나와서 걷거나, 운동한다. 센 강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안식년을 보낸 필자도 일요일이면 덩달아서 센 강변으로 나와서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사람들과 함께 맑은 공기를 즐겼다. 그랑드 자트섬은 필자의 숙소가 있었던 샤튜섬과 반대편에 있지만 센강 중간 섬의 긴 형태는 같다.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등장하는 모델들도 오늘날의 파리지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현대식 건물과 모자와 의상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과학적인 시각 이론과 색채 이론에 근거한 쇠라의 학위 논문 같은 그림이다. 그는 기존 인상파의 그림이 대부분 감정적, 즉흥적이지만 과학적인 시각 이론과 색채 이론에 근거하여 그림을 소상히 그렸다. 쇠라는 선배들의 정리되지 않은 붓 터치를 다양한 색채 대비를 통해 법칙화하여 신인상주의, 점묘주의를 열었다.

▲ 조르주 피에르 쇠라,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207.5x308cm, Oil on Canvas, 1884~1886,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수많은 분석을 통해 2년간에 걸쳐 그린 점묘주의의 결정체이다. 쇠라는 이 작품을 위해 60여 점의 드로잉과 습작을 남겼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40여명의 모델 표현은 그의 수많은 연습 속에 태어난 것들이다. 셀 수 없는 수많은 점을 찍어 형태를 표현하는 쇠라의 중노동은 차라리 고문이나 극한 수행에 가깝다.

화면은 섬의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는 인물들과 강에서 요트, 조정 등 뱃놀이로 이원화하여 현재의 가상 현실(VR)과 같은 입체 착시를 불러오게 한다. 소재를 확연하게 보이게 하는 빛과 그림자의 콘트라스트 표현은 가히 절대적이다. 필자는 이 작품의 원화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전작인 영국 내셔널갤러리에 있는 ‘아스니에르의 물놀이’를 보고 그 규모와 테크닉에 압도당한 바 있다. 이 작품 역시 2년간에 걸쳐 그렸다.

천재 화가 쇠라는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대작 그림을 오랜 기간 동안 수없는 색 점을 찍는 극도의 집념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32세에 후두염으로 갑자기 요절했다. 그는 마지막 역작 ‘서커스’를 그리다 너무 힘들어 미완성인 상태로 부랴부랴 전시회에 출품한 상태에서 세상을 뜬다.

내성적인 쇠라는 사회 활동과 친구가 적었고, 오직 예술 작품 제작에 온몸의 기력이 소진되어 산화하였다. 한국의 화가 장욱진은 “몸을 버리지 않으면 얻는 게 없다.”는 말을 했다. 역작을 하는 화가는 거의 눈과 팔이 아픈 직업병을 갖고 있지만, 몸과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역작을 이룬 쇠라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작가 정신과 작품에 대한 과학적 통찰력은 후에 팝 아티스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오늘날 ‘예술과 과학’의 융합 가치관을 남겨 주었다.

필자는 같은 화가로서 쇠라의 역작을 보면 송구한 마음이 든다. 그의 상상 못할 집념과 실험 정신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필자는 그의 존재 앞에서 고개 숙이며, 절대로 부화(浮華)한 마음을 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김성운
화가,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디자인학 박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한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 단체전 230회, 파리 퐁데자르·라빌라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대한민국현대미술전 심사위원,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재림미술인협회장, 작품 소장 :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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