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드뷔시에게 바침

2019.04.11 조회수 3,635 커뮤니케이션팀

김성운 교수의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음악으로 힐링하다

필자는 파리시 현대미술관에서 라울 뒤피의 초대형 작품 ‘전기의 요정’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11m 천장 높이와 60m의 벽면을 가득 채운 뒤피의 작품은 그야말로 시야에 보이는 것이 모두 화면이고, 그림의 바다와 같았다. ‘전기의 요정’은 전기 발명과 관련된 과학자들에게 경의와 찬사를 표하는 작품이다.

뒤피는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 도시 르아브르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고 자라서인지 스케일이 크다. 그리고 가난한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난 연유로 그림이 음악적이고 리드미컬하다. 그의 부모와 동생 2명이 모두 음악가다. 그의 음악 관련 작품 중에는 ‘음악가에게 헌정한 그림들’,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 ‘시골의 음악가들’ 등이 있고, ‘전기의 요정’에도 경쾌한 붓질, 음표,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등을 많이 그려 넣었다.

작품 ‘드뷔시에게 바침’은 마티스의 야수파에 영향을 받은 그림이다. 벽면과 오른쪽의 액자는 모두 ‘스파티필룸’이라는 식물을 그린 것인데 붓에 리듬을 부여하여 아르 누보 장식처럼 경쾌하게 표현했다. 이 화초는 공기 정화, 새집 증후군을 없애 주는 힐링 식물이다.

▲ 라울 뒤피, 드뷔시에게 바침(Homage Claude Debussy), 59×72cm, Oil on Canvas, 1952, 니스, 예술박물관.

피아노 표현은 상단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을 사용하고 악보에는 드뷔시의 불어 ‘CLAUDE DEBUSSY’를 가볍게 그렸다. 넓은 채색 위의 선들은 음률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이 그림은 동세 넘치는 터치와 리듬, 농담을 달리하는 자유로운 검은색 선, 오렌지색, 연두색의 그라데이션 표현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경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유현(幽玄)한 맛이 있다.

시인 아폴리네르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장난으로 “눈을 감고 그렸니?”라고 돌직구를 던지자, “그래, 추한 세상이 보기 싫어 눈을 감고 그렸지”라고 응수한다. 후에 라울 뒤피는 “나의 눈은 태어날 때부터 더럽고 추한 것을 없애도록 사명을 부여받았다”라는 철학적인 말을 남긴다.

그는 가난하여 중학을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지역 미술 학교를 나온 후 주야로 노력하여 장학금으로 명문 미술 학교를 마쳤다. 그는 회화는 물론이고 판화, 삽화, 직물, 도예, 연극 무대 장식에도 능했다. 뒤피는 항상 낙천적이다. 그는 “슬프고 우울한 그림은 그려 보지 않았다.”고 할 만큼 무한 긍정주의자다. 아마도 가난에 구애받지 않고 삶을 우아하게 즐기면서 사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음악적 집안 태생이라 그럴 것이다.

필자는 이 그림 속의 주인공인 작곡가 드뷔시의 생가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곳은 생제르맹 궁이 있는 지역으로 시내 중심가 주택에 위치해 있다. 거기에는 당시 드뷔시가 이용했던 우물터가 있어 기억이 생생하다.

필자는 뒤피의 위대한 예술이 어떻게 탄생하고 기축되었는지 알기 위해서 그가 활동했던 르아브르 항구와 도빌, 트루빌에 갔었다. 그곳은 뒤피 예술의 자양분이 된 넘실대는 파도, 하얗고 고운 모래와 몽돌, 노르망디 특유의 집들이 소담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김성운
화가,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디자인학 박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한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 단체전 230회, 파리 퐁데자르·라빌라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대한민국현대미술전 심사위원,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재림미술인협회장, 작품 소장 :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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