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문학 속 가정 이야기] 찰리 브라운의 품격

2024.07.01 조회수 90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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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욱 창의융합자유전공학부 교수 / 문학사상 편집기획위원]

제주도에서 ‘스누피가든’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어릴 적 좋아했던 스누피 캐릭터를 실컷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스누피가든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곳에서 느끼게 된 감정은 단순히 볼거리로서의 캐릭터 감상 측면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스누피가든 내부에는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을 주인공을 한 만화 ‘피너츠 Peanuts’의 스토리 라인, 캐릭터들의 대사 등이 적혀 있었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중요한 메시지들을 담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루저”

스누피의 단짝 친구인 찰리 브라운은 “사랑스러운 루저”라고 불린다. 찰리 브라운은 야구 팀 투수 겸 매니저인데, 그의 야구팀은 “세계 최악”이지만 늘 야구 시즌이 오기를 기다린다. ‘피너츠’의 작가 찰스 M. 슐츠는 늘 지기만 하는 “세계 최악”의 팀 투수가 야구 시즌을 기대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루저=패배주의’라는 공식을 전복하는 듯하다. 루저라고 해서 늘 패배주의에 젖어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말이다. 더 나아가, 루저도 사랑스러울 수 있음을,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말하려는 듯하다. “사랑스러운 루저”라는 모순어법은 이렇게 성립된다.

“맙소사!”(Good Grief!). 그다지 잘 하는 것이 없는 찰리 브라운이 자주 내뱉는 말이다. 찰리 브라운과 그의 야구팀 친구들은 결과가 좋지 못해도 끊임없이 도전하며 거듭 경기장에 선다. 주목할 것은 찰리 브라운의 ‘덤덤한’ 표정인데, 이기든 지든 늘 덤덤한 표정으로 자기 할 일을 하는 그의 표정은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우리를 반성케 한다.

▲ 사진=스누피가든 제공

스누피가든 내부의 각각의 테마 홀에서는 독특하고 위트 있는 인생 이야기와 삶의 지혜를 담은 ‘피너츠’ 친구들의 일상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작가 슐츠는 찰리 브라운, 스누피, 마시, 루시, 라이너스 등의 캐릭터를 통해 인생, 사랑, 웃음, 애환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슐츠는 독자들에게 패배의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긴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또한, 실수를 하는 것은 그가 인간이라는 증거이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스누피가든의 정원으로 나가 보니, 벤치에 적혀 있는 “인생에는 햇살과 비가 있다(Life has its sunshine and its rain).”는 마시의 대사와, “우리는 승리보다 패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잖아(We learn more from losing than we do from winning).”라는 루시의 대사가 나를 반겼다. ‘피너츠’의 메시지는 명확해 진다. 우리 인생에는 따듯한 햇살이 내리쬐는 날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 공존하는데, 우리는 굵은 빗줄기에 흠뻑 젖은 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연구소

이러한 맥락에서, ‘KAIST 실패연구소’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시사한다. 카이스트에서는 2021년 실패연구소를 설립했는데, 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과감한 도전정신을 함양하기 위함이다. 실패연구소가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실패 주간’에는, 학생들이 너도나도 실패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나와 ‘자랑’하는 시간을 갖는다. 실패를 자랑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루시의 말처럼, 우리는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는 도전하는 사람의 특권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 그러므로 실패란 열정의 산물이다. “혹시 아직 실패를 많이 안 해봤다면 그걸 더 걱정해야 한다.”는 조성호 실패연구소장의 말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무빙’에서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능력자 두식이 아들 봉석에게, 하늘을 잘 날기 위해서는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잘 떨어져야 한다.”고 두식은 말한다.

조성호 소장은 이어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백날 해도 사회가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아니면 소용없다. 실패를 용인하고 실패를 통해 배우는 문화를 앞장서서 만들어 보자.”고 말한다. 말로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실패한 자를 ‘루저’ 취급하는 사회는 위선적이다. 실패연구소의 진짜 목적은 실패해도 괜찮다고, 더 나아가 실패를 거듭해야 무엇인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실패한 자를 응원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사진=스누피가든 제공

자갈길 잘 걸어가기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모든 악몽은 언젠가는 삶의 일부인 축복으로 바뀐다.”고 했다. 여기에 한 마디 첨언하자면, “모든 악몽은 [이를 악물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삶의 일부인 축복으로 바뀐다.” 그런데 찰리 브라운은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덧붙이는 듯하다. “모든 악몽은 [덤덤하게 툭툭 털어내면] 언젠가는 삶의 일부인 축복으로 바뀐다.”

우리가 흔히 하는 축복의 말로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말이 있다. 특히 새 출발을 하는 사람에게 종종 건네는 말이다. 하지만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말을 건네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다. 인생에는 꽃길보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길을 잘 걸어 나아가는 것은 무엇보다 이 자갈길들을 ‘어떻게’ 통과하는지에 달려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에는 ‘교육’은 없고 ‘입시’만 있다고 통렬하게 지적한다. 어떠한 좋은 교육적 명분을 갖다 붙여도, 그것은 ‘입시 전략’으로 왜곡되고 변질되고 만다. 우리나라 입시 광풍의 이면에는 결국 남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어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교육은 능력주의 신화와 결탁하여 이러한 욕망을 속절없이 방관하거나 심지어 부추기고 있음을 쉽게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우리의 교육이 승리하는 법만을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은 살아가다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패배의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피너츠’는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패배의 품격’을 가르쳐 준다. 패배의 순간을 마주할 때, 찰리 브라운처럼 ‘맙소사!’라는 낮은 탄식을 외치며 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자갈길을 걸어가자.

월간 <가정과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