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마음건강] 누구나 인정에 목말라 있다

2024.07.01 조회수 540 커뮤니케이션팀

[안재순 상담심리학과 교수]

중학교 3학년인 채영이는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로부터 모범생으로 칭찬이 자자하다. 그런데 시험 성적이 좋지 않으면 거의 패닉 상태가 된다. 1등이 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쓰레기 같은 인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극도의 불안으로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린다. 항상 잘한다는 칭찬만 받아서인지 누군가로부터 지적을 받거나 혼이 나면 분이 나서 견디지 못 한다.

40대 직장인 성준 씨는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나와 일한 적이 많다. 팀장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도 팀장이 소리를 지르며 지적하면 손발이 얼음처럼 차갑게 마비된다. 억울한 마음에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한다. 때로는 팀장이 이번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고 칭찬하지만 기쁨이나 안도감은 잠시 잠깐이고, 다음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금세 불안이 밀려온다.

3년 전 은퇴를 한 재식 씨는 최근 들어 거의 집에만 머물러 있다. 직장에서 나름 존경과 인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아무 쓸모없이 버려진 폐품처럼 생각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무시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가족들 눈치를 봤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과거에 무슨 일을 한 사람이었는지, 어떤 직책을 가졌는지’ 장황하게 설명을 하며 허세를 부렸다.

남에게 인정받아야 비로소 안심이 되고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 ‘유능한 사람’이란 말을 들어야 안심되는 사람은 인정 중독자다. 인정 중독자들은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에서 자기 존재감을 찾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같은 인정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예민하다. 타인의 부정적인 말에 감정이 쉽게 상처를 받거나 동요한다. 항상 사람들이 나를 ‘착한 사람,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긴장되고 상대방에게 맞추어 주느라 피곤하다.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이 더 우월하면 안심이 되고 더 낮다고 평가되면 위축된다. 마치 목마른 사슴처럼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이들은 도대체 왜 타인의 인정에 집착할까?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인간은 미숙아로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기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또한 그 보살핌을 받기 위해 사랑과 인정이 필요하다. 사람들로부터 “와! 정말 대단한데?”, “멋집니다. 최고예요.”라는 칭찬을 들을 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는다. 이처럼 인정 욕구는 성취를 하기 위한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건강하게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결핍감으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확인이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부모가 자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부모 마음에 드는 행동을 했을 때에만 좋아하고 칭찬을 했거나, 그렇지 못할 때는 냉담한 표정으로 쌀쌀맞게 대하면서 ‘○○하면 너를 사랑해 줄 거야’라는 조건부 사랑 속에서 자란 아이는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항상 부모와 타인의 눈치를 보며 인정을 갈망한다.

▲ 사진=envato elements

과도한 인정 욕구는 어떤 문제를 일으키나?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전혀 이상하지 않고 병리적인 것도 아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모든 아이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참을 수 없는 욕구를 가지며, 어떤 아이도 이런 욕망 없이 성장할 수 없다.’고 했다. 이처럼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분명 삶의 동기 부여이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되어 버릴 때 문제가 된다. 인정을 받지 못했거나, 누군가로부터 거절을 당하거나 비난받았을 때 삶 전체가 허망하게 무너져버린다면 그것은 문제다. 단지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에 내 삶의 소중한 것을 모두 걸어 버린다면 내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내주는 것이 된다.

과도한 인정 욕구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자신에게 가혹한 요구를 하는 완벽주의에 빠지기 쉽다. 즉 인정 중독자들은 타인의 시선에 저당 잡힌 인생을 사는 셈이다. 내 삶이 전적으로 타인의 판단에 달려 있다. 마치 개의 목줄을 달아 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손잡이를 주변 사람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인정해 주면 살랑살랑 꼬리를 치며 행복해하고 인정해 주지 않으면 주눅 들고 불행해진다고 생각한다. 또한 하나를 성취하거나 한번 인정받았을 때 일시적인 만족이 되지만 바로 다음 성취나 인정을 받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이러한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만성 피로감으로 녹초가 되고 짜증이 많아진다.

오늘 나를 인정해 준 사람이 내일은 인정해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타인의 인정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며 가변적이어서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삶은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불안과 우울, 분노라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마치 태평양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물결치는 대로 요동치는 인생을 살게 된다. 나의 소중한 삶이 남에게 저당 잡혀 그로 인해 나의 행복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참 억울하다.

문제는 인정 욕구를 ‘어떻게 없애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자신이 타인들로부터 인정받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온전하지 못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인정 중독성 성격은 만들어진다.

먼저 자신이 인정 중독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면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감을 회복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충분하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기 위해서 더 필요한 것은 없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라고 자신에게 말해 준다. 가장 소중한 친구를 대하듯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 주자.

‘그것밖에 못하니?’, ‘너는 그게 문제야.’라는 타인의 공격으로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았을 때 누군가 한 사람은 ‘이만하면 충분해.’, ‘네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아.’, ‘너를 응원하고 있어.’라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해 주면 자존감은 회복된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만약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다시 좋아하는 것도 그 사람의 몫이다. 인간관계에서 내 영역이 아닌 부분은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정 욕구를 채우고 싶다면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에만 집중하지 말고 상대방 자체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연민의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남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만 원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월간 <가정과 건강> 6월호